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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Nov 12. 2018

625 이야기 / 박완서 / 1992~1995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항상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 민족분단의 상흔과 가족수난사의 비극을 담고 있는 역설(逆說)적 이야기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동화책을 읽는 듯한 기분을 주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문체. 흔히들 말하는 '그땐 그랬지'라는 체험담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바로 이 분을 통해서 들어야만 할 것 같은 외할머니 같은 존재.  


  본 포스팅은 박완서 선생의 자전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리고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1995)'에 대한 예찬문이다. 한국문학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선생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쓴다는 개인적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나에게는 브런치를 만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소위 '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듣는 재미와 이유, 그리고 지성의 등불이라고 하는 문학작가의 경험과 고백이라는 것이 인문학과 역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일깨워준 계기이기도 하다.


  박완서 선생의 작품은 사실 박경리 선생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러운 연계로 알게 되었다. 분단 이후 최고의 한국 문학 유산으로 꼽히는 '토지'를 읽다 보니 박경리 선생의 일대기를 더듬어보게 되었는데, 일제 식민시절과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체험한 두 거장의 역사적 체험은, 가족의 아픔이라는 개인적 체험과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분은 공통된 역사적 체험과 가족 수난의 아픔을 서로 나누고 위로하며 문학적 동지가 되었던 것.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박완서 선생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으며, 예의 그분의 일대기와 개인사 또한 작품들 속에 절절히 녹아들어 가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었다.


  상기 두 작품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논픽션이다. 92년도에 출판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경우 작가의 유년시절부터 625 전쟁 발발까지의 시간을 다루었으며, 95년도에 출판된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의 경우 그 내용을 그대로 이어 작가가 결혼을 하게 되는 1953년 까지를 다루고 있다. 각 작품의 제목은, 작품을 읽다 보면 의미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왜 작가가 되었냐는 수많은 질문에, 본인이 체험한 것들을 나중에 어떻게든 기록하고 증언하겠다는 의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대답은 이미 여러 기고문이나 인터뷰를 통해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선생에게는 식민시절과 분단의 역사가 중요한 체험이 되었다는 뜻이고, 그것이 본인의 문학적 역량과 맞물려 시대적 모순과 비극,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소재가 되었던 것 같다. 


  이 두 작품을 읽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나도 모르는 옛 시절, 어느 시골의 전통가옥으로 돌아가 생활하는 기분이다. 낮은 산봉우리와 초록이 무성한 마을을 배경으로 개천을 흐르는 시냇물 소리,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냄새, 산등성이 아래로 펼쳐지는 붉은 저녁노을, 여인네들이 모여 앉아 집안일을 하며 수다를 떨던 툇마루의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눈 앞에서 삐거덕거리는 굉음을 내면서 솟을대문이 열리는 것 같고, 마을 앞 얼어붙은 호수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일제 식민지 시절의 개성 지방을 중심으로 시작된 작가의 유년시절의 기억 고백은 수 십 년을 뛰어넘어서 바로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아주 선명하고 세밀하게 다가온다. 사진 한 장 없이, 오로지 문자만으로 타인에게 이렇게 생생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작가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격벽하던 역사를 우리는 체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겨진 기록과 글을 통하여 보다 생생하게 경험할 행운을 누린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그렇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치 할머니가 바로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매우 잘 들리고 읽힌다. 시간과 공간의 순서대로 마치 물 흐르듯 술술 이야기가 흘러간다. 심지어는 그렇게 까지 언급하고 묘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시콜콜하게 본인의 감정과 감정 사이의 스펙트럼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우체부는 가방 속에 든 편지보다 여러 동네를 돌면서 보고 들은 소문이 훨씬 더 풍부했다. 할아버지가 그를 쉬어 가라고 사랑마루에 붙들어 앉히면 나는 냉큼 안에다 연통을 해서 입맛 다실 걸 내오도록 했다. 그건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묵계 같은 거였다. 그런 나를 할아버지는 "요, 입의 혀 같은 거." 하면서 예뻐하셨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베 수건에 싸서 감춰 놓았던 삶은 밤이나 떡 쪼가리 같은 걸 상으로 주실 때는 정말 싫었다. 음식 국물과 침을 닦아 내는 데쓰는 베 수건은 늘 눅눅하고 시척지근한 냄새가 났다.


  이 책을 손에 쥐고선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이야기 흐름의 재미라기보다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었던 전통 시골의 모습, 식민지 시절의 생활상,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변모과정 그리고 6.25라는 사건들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희로애락의 인간군상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아주 가깝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여성이라는 말이 언제 생겨났는지, 단발머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일사후퇴란 무엇인지, 피난이라는 것은 왜 하게 되었는지, 한강을 건너는 문제가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도대체 빨갱이라는 단어 앞에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처신하고 고민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싱아'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그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수난시대의 인간생활의 역사가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전쟁세대가 아닌 나는 625 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의미였으며 또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위협을 가했는지 실감할 수 없었으나, 박완서 선생의 체험과 그에 따른 증언의 필력으로 당시의 생활상과 모습을 머릿 속에 그려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빠가 한강 다리 건너는 데는 문제가 많았다. 또 그놈의 시민증이 문제였다. 피난민중에 간첩이 섞여 있을까 봐 도처에서 검문이 심했다. 후퇴를 앞두고 시민증을 발급한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었다. 의용군 갔다 도망쳐 온 사람을 비록 빨갱이로 몰지는 않는다 해도 시민증을 발급받으려면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했다. 오빠가 그걸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본인도 그건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민증은 빨리 내달라고 졸랐다. "어쩌면 나 시민증 하나 그냥 내다 줄 빽도 없냐? 우린."


한국전쟁 당시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 피난민들은 생존이라는 또 다른 삶의 전쟁 속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는 스무 살이 된 주인공과 그 가족이 전쟁의 참상 속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을 더욱 실감하게 묘사하고 있다. 독자가 그 공간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될 정도로 배경 묘사가 뛰어나다.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을 바로 옆에서 쳐다보고 목소리를 듣는다는 착각을 갖게 될 정도로 인물 묘사도 세밀하다. 서울을 가운데에 놓고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는 남과 북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이 짓밟히고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것과 대비되어, 무의미한 전쟁의 허망함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특히 두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가족사의 슬픈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근접하게 다가와 더욱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군인의 시각이 아닌, 철저하게 고통받는 서민의 시각에서 서술된 이야기. 바로 그 이야기가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삶이었다. 특히 박완서 선생의 많은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어머니와의 애증의 관계, 그리고 격변하는 시대 속 여자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고뇌도 처음부터 끝까지 베어난다. 우리는 이 두 작품에서 박완서 선생의 문학적 기초를 이루는 부분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년아, 사내 녀석 때문에 울어,  그까짓 지섭이 녀석 때문에. 지섭이가 죽었냐? 죽어도 그렇지, 지섭이 녀석 때문에 네가 왜 우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오래비가 죽어도 안 울던 독한 년이 겨우 지섭이 때문에 울어? 너 겨우 지섭이하고 연애 걸다 채였냐? 아이고 우세스러워.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너를 금이야 옥이야 길렀단 말이냐? 아이고 원통해. 겨우 이런 꼴을 보려고."  대강 이런 넋두리였다. 내가  할아버지 돌아가셔도 안 운 년이라는 건 어려서부터 별호가 나 있었다. 할아버지 사랑을 유난히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내 성질이 고약한 걸 말하려고 할 때나, 손녀딸 귀애해 봤댔자 소용없다는 일반론을 펼 때마다 들먹이는 만만한 예였다. 오빠 때도 그랬던가? 얼마 오래 전도 아닌데 잘 생각이 안 나면서, 그런 일로 죄의식은 이제 그만 느끼고 싶었다. 정말 비통할 때는 눈물이 잘 안 나오다가도 슬픔에 적당한 감미로움이 섞이면 울음이 잘 나오는 특이 채질도 있다는 걸 이해받고 싶었다. 지섭이를 보낸 허전함에도 눈물을 자극하기 알맞은 달착지근한 맛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겨우 이런 꼴을 보려고 너를 길렀느냐는 엄마의 절규가 더 가슴을 쳤다. 엄마가 보고자 한 꼴은 무엇일까. 아직도 엄마는 나에게 보통 딸 이상의 기대를 걸고 있단 말인가. 아아, 지겨운 엄마, 영원한 악몽.


박완서 선생이 미군 초상화부에 근무했다고하는 서울 종로 미군 PX  당시 사진 (현 신세계백화점)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의 현세대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알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나 동화에서 나오는 먼 나라 이야기에 식상하고 따분하지만, 내 가족과 내 나라 그리고 내 역사의 줄기가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 곧 그 증언에 귀를 기울이고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어느 역사 다큐멘터리를 봐도 이렇게 시시콜콜 자세하고 친근하게 역사를 체험하는 경험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어떠한 역사교과서를 읽는다고 해도 이렇게 생생하게 민족분단의 아픔과 서민의 수난을 이해하는 경험은 하지 못할 것이다. 이 작품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역사적 친근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이 두 작품은 각 가정의 책꽂이에 한국 근현대의 역사책과 나란히 당당하게 비치되어 있어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훌륭한 역사적 문화유산 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소중한 체험의 기억과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남겨주고 간 분을 기리고, 그 기록들을 후세에 제대로 전달하는 과업 또한 숙명처럼 여겨야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만나고 싶은 인생의 선배, 담소를 나누고 싶은 친근한 멘토, 어떠한 이야기라도 옆에서 들어보고 싶은 문학의 어머니...  영원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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