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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May 23. 2022

외할머니와의 이별


그분은 제주도 여인이다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태어나자랐다

주민등록 출생년도는 1933년이지만 사실 5년 늦게 출생신고가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 여인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분은 어려서 학습의 기회를 얻지 못했고

그분의 어머니와 같이 농사와 가사에 전념해야 했다

일제 식민시절과 6.25전쟁 그리고 4.3사건 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파란만장한 그분 인생의 바탕이 되었으리라


그분은 성실한 남자와 결혼하였고 돈을 많이 모았으며 다산의 축복을 누렸으나

돈과 관련된 일에 재능과 불운을 함께 맞이하면서 가족들과 마찰이 생겼다

그분은 모질고 악착같으면서도 셈이 빠르고 활력이 넘치는 철의 여인이었지만

독선과 고집과 불같은 성격으로 남편과 자식들의 원성을 많이 사게 된다


가세가 기울고 나서부터 그분의 가족들은 결혼한 장녀가 살고 있는 서울로 이주하게 된다

제주도 토박이 가족들의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분은 여전히 생에 대한 집착과 에너지가 대단하였지만

여전히 재산과 가정에 대한 유지관리가 이롭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분은 남편 및 자녀들과 계속해서 마찰을 빚었고 가세는 갈수록 기울었다

집 안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빨간색 압류딱지가 군데군데 붙기 시작했고

그분의 가족들은 결국 길바닥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


미아리의 초라한 단칸방

무너진 가정과 이합집산으로 남은 6명의 식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6명 중에는 나와 내 동생도 포함되었다

체념 절망 연탄 창호지 쥐 집주인 사춘기 어둠 다툼

그리고 또 절망

그래도 서로 굶어 죽지 않으려면 다툼을 멈추고 어떻게든 일을 해야 했다

환갑이 넘은 노인들이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하였고 집안에 남은 사람들은 부업을 했다

종이를 접고 상자를 만들고 봉투를 붙인다

마대자루에 담아 계속 갖다주면 하루에 2만원원 정도를 벌 수 있었으리라

사람이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점차 빚이 줄고 돈이 모였다

가족들의 피나는 노력들 때문에 우리는 서로 혹독하게 단련되었고 살아남았다


길거리로 내몰린 지 6년 만에 전셋집을 마련하여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나는 지옥을 탈출하여 대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졸업 후 사람답게 결혼할 수 있었다

그분은 삶의 여러 변곡점을 지날 때에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울고 웃었으며 호통치고 훈계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였다

그분이 추구하신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단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자식들이나 손자들이 굶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분은 내가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셨고

자신이 만든 밥을 가족이 맛있게 먹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셨다


그분은 제주도 음식을 지상 최고의 음식으로 여기셨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환경에 있었어도 그분은 음식 장만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분은 시장을 오가며 찬거리와 음식재료를 사 오는 것을 종교처럼 행하였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도 가스레인지가 없었어도

그 유별난 제주도의 토종 음식들은 풍성하게 가족들에게 제공되었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그분과 같이 살았으니

결국 나는 제주도 문화와 사투리 속에서 자라고

오로지 제주도 음식만을 먹으면서 성장한 셈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정신없이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동안

나의 의식 속에 그분은 없었다

나의 삶이 중요하였고

나의 자식이 나처럼 고통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였으며

나의 집과 회사와 미래가 중요하였다

그렇게 10년간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어느 날인지 모르게 그분이 치매 증상에 시달린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절 때 가끔 멀리 살고 있던 가족들과 조우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분은

시간이 갈수록 기억을 잃어갔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나이를 먹고 점점 철이 들어가던 시기

나는 문득 그분이 만든 제주도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작은 쪽파와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고사리육개장

배추 조각과 간 콩을 넣고 만든 콩국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던 기름진 고등어국

된장국에 오이를 잘게 썰어 삶은 오징어와 얼음과 양파를 넣어서 여름에 먹었던 오이냉국

몸이 아플 때 간혹 눈이 돌아갈 정도로 근사하게 차려졌던 닭죽

그분 스스로 들떠서 항상 구울 때마다 시끄러웠던 옥돔구이

그리고 정말 운 좋게 두세 번 맛보았던 그 전설의 제주 음식 꿩엿

나는 달려가 그분에게 그때 바로 그 음식을 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분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힘들었던 오래 전 기억들을 웃으면서 서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분의 치매가 너무 심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미...

때가 너무 늦어버렸던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젊어서 나와 내 동생을 그분에게 의탁하였던

그분의 장녀인 나의 어머니께서

10년이 넘게 그분을 직접 수발하셨다

그분 옆에서 직접 먹고 자고 생활하고 몸을 닦아주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대화하셨다

그분의 장녀는 나와 내 동생을 키워주셨던 그분에 대한 속죄의 심정으로

본인의 남은 여생을 그분에게 헌신하는 것 같았다

그분은 점차 심하게 기억을 잃어갔고  급기야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그분은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지만 유난히 손아귀의 힘이 강했다

그래서 말은 못 할지언정 가끔 나의 손을 꼭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그분께 우스갯소리로

할머니 정신 좀 차리세요 안 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요

라고 주절대고는 했다


그렇게 계속 힘겹게 10여 년간 병간호를 하던 그분의 장녀인

나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

여러 주삿바늘과 호스를 꼽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시며 경황없이 몇 마디하고는 끊으셨다

조금 이따가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받았다

친척들이 수소문하여 장례식장을 마련하였다고 하였다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전화를 끊고 5분간 멍하게 상념에 잠긴다

생사고락을 함께하였던 그분과의 모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분은 나의 외할머니이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대학졸업 후 독립할 때까지

나는 제주도 여인이었던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고

외할머니의 언어를 듣고 쓰고 품고 지내었으며

외할머니가 만든 음식만을 먹으면서 성장하였다

외할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입관하기 전 나는 나를 키워주신 분의 귀에다 대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짧은 작별인사를 고하였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외할머니는 나를 위해서

밀봉이 잘 되지 않는 도시락 통에 정성스럽게 된장국을 담아서 싸주셨더랬다

나는 그것을 전혀 몰랐고 학교에 도착하여 가방 속을 열어보니

된장국 범벅이 된 가방의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여

수업 내내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고 도시락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집어 내던지며 외할머니께 버럭 소리 질렀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나를 키워준 은인에 대한 커다란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부디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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