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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pr 16. 2022

인용문 출처 탐험기

샤를 보들레르

  몇달 전에도 유명인의 어록들이 족보없이 남발되어 떠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잡설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최근 일화가 하나 더 생겨서 넋두리를 또 해본다.


  보바리 부인을 창시한 플로베르의 정신적 동지이자 탐미주의의 조상인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라는 작품이 궁금해졌다. 이는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한,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시마 유키오 등을 탐험하면서 얻어낸 유미적 문학에 대한 호기심의 한 줄기였다. 책에 대한 리뷰를 여러 방면으로 검색해보던 중  '악의 꽃'이라는 책을 팔기위해서 온갖 출판사들이 갖다 붙이는 문장은 아래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풍경에 부과하는 관념과 감정을 통해서 아름다운 것이다.


  혹은 조금 더 구체화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돌아다니는 것도 목격할 수 있다.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통한 나의 개인적인 시선, 그리고 내가 그 풍경에 부과하는 관념과 감정을 통해서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보들레르의 이 어록은 막상 '악의 꽃'이라는 시집에는 아예 실려있지도 않은 내용이거니와, 그 출처가 전혀 표기되지 않은 채 사용되기 일쑤여서, 나처럼 인문학에 문외한인 공학도는 그 족보가 궁금해지기 시작하여 구글링을 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방대하다는 인터넷 그 어디에서도 이 어록의 족보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내로라하는 출판사에 전화해서 해당 어록이 표현된 책의 홍보내용과 관련한 문의를 했더니, 해당 내용은 인터넷의 문고 측에서 홍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표시한 내용으로 본인들을 알 수 없다는 답변. 그런데, 인터넷 문고이건 출판사이건, 샤를 보들레르처럼 유명한 사람들의 어록은 출처에 대한 아무런 확인 없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 일쑤라는 것을 나는 관습적으로 잘 알고 있다.


  사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어록이나 명언, 혹은 격언이나 속담 등은 정확하게 최초로 기록된 내용에서 마구 왜곡되고 현시대의 기호에 맞게 변형되어 유통되기 일쑤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맹자처럼 수천 년이 지난 사람들의 말이라는 것들도 죄다 그러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TV에서는 최근 들어 인권이라든지 급격하게 발전한 민주화에 대한 의식, 그리고 그에 따른 역사적 범죄를 분석하는 교양 예능을 많이 만들어내면서 엄청난 양의 어록과 명언들을 남용하고 있는 마당에, 한나 아렌트 같은 현대 정치 철학가의 어록이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되어 사용되는지는 불 보듯이다.


  이리저리 해당 어록에 대한 출처를 찾아 헤매던 중, 국내 유명 포탈의 지식문답 페이지에서 이름 모를 한 제보자의 도움을 통해 그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프랑스어 원문으로 그대로 남겨보면 아래와 같다.


Si tel assemblage d’arbres, de montagnes, d’eaux et de maisons, que nous appelons un paysage, est beau, ce n’est pas par lui-même, mais par moi, par ma grâce propre, par l’idée ou le sentiment que j’y attache.


번역하자면, 


만약 우리가 풍경이라고 부르는 나무, 산, 물, 집들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감으로 내가 그것에 부여하는 생각이나 느낌으로 인한 것이다.


이 어록은 샤를 보들레르가 직접 작성한 1859년 살롱 평론, 챕터 8 풍경(Le Paysage)이라는 단락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다. 



  어디에서 아포리즘이나 어록을 가져다 쓰더라도, 그 출처를 제대로 확인하고 쓰자. 그래야 로뎅이 오뎅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훗날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를 이 어록의 출처를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하여 기록으로 남겨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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