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back Jul 16. 2022

작가의 마감 / 나츠메 소세키 외 / 2021

  가끔 마트를 아이쇼핑하면서 맘에 들거나 손이 가는 먹거리를 덥석 집어 들게 되는 원초적인 수컷의 본능처럼, 도서관에서도 '나'라는 구석기인은 본능적으로 책의 제목과, 표지의 느낌과 손으로 집어 들기에 적절할 정도의 두께와 내가 고개를 숙여 닿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 꼽혀있는지를 0.5초 만에 간파하여 낚아채고는 한다. 물론 그러한 독서습관은 95% 이상이 실패로 돌아가지만, 5% 정도의 확률로 나에게 잔잔한 기쁨을 주는 경우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러한 날이다.


  오래간만에 강남역으로 서울 나들이를 하려는 촌놈이, 대중교통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잠시 들른 도서관에서, 버스에서 읽을 책을 고르다가 본전을 뽑은 것이다. 과연 내로라하는 일본 작가들의 이면과 일상의 진면목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 것을 목격한다. 완전히 몰랐던 세계! '과연, 작가들의 삶은 그러하였구나'라고 무릎을 치면서 읽게된 숨은 진주같은 책이었다.


  여러 가지 내용과 에피소드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지만, 내용이 그다지 재미있다거나 에세이스럽지는 않다. 대신 반대로 우울함이 많고, 또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이 작가들 대부분이 매우 가난하고 궁색하게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글 쓰는 속도와 템포와 버릇이 너무 느려서 정해진 시간 내에 글을 많이 쓸 수가 없으므로 항상 가난하게 생활하였다고 한다. 또한 '나츠메 소세키'는 평소 주변으로부터 명성에 버금가는 돈을 모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들렸던 것에 진저리가 났던 것인지, 에세이 내용을 마치 가계부를 펼쳐놓고 경찰서에서 진술하듯 풀어나간다. 또한 '마키노 신이치'라는 작가는 밀린 숙박비를 생각하면 심장이 경종을 울려 마치 피를 토하고 죽는 인형극의 주인공처럼 글을 쓰게 된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리고 라쇼몽의 전설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경우 고작 한 매에 30전에 해당하는 원고료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뒤 친구와 같이 쓴웃음을 지으며 허탈하게 웃어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정 인생을 피곤하게 살다간 천재였던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음에도, 기행으로 호적이 파이고 스스로 자처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아는 전설적인 대가들의 전성기 활동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생계를 위한 사투였을 뿐, 그들의 사후세대가 선사해준 호사를 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내가 막대한 부를 쌓았다느니 굉장한 저택을 지었다느니 땅과 집을 사고팔아 돈을 벌었다느니, 갖가지 소문이 세간에 떠도는 모양이지만 다 거짓말이다.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면 이런 더러운 집에서 살 턱이 없다. 땅과 집을 어떤 경로로 사들이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 집도 내 집이 아니다. 셋집이다. 매달 집세를 내고 있다. 세상의 소문이란 게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나츠메 소세키 / 문인의 생활)
지금 막 20엔을 보냈으니 받아주세요. 항상 돈을 재촉하니 나도 정말 곤란합니다. 어머니한테 말하려야 말할 수 없고, 내 선에서 보내려니 진짜 난감합니다. 어머니도 돈 쪽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돈은 허투루 쓰지 말고 아껴써야 합니다. 지금은 잡지사에서 얼마라도 받고 있겠지요? 너무 남에게 기대지말고 열심히 참고 견디세요. 뭐든지 조심해서 하세요. 몸조심하고, 친구들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가족 모두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다자이 오사무 / 번민일기 中 누나의 편지)


  또한 그 시절 작가들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잡지사나 출판사의 청탁을 받으면 절대로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승낙하여 꾸역꾸역 글을 써 나가는 형편이라는 것과 그것이 마치 자신이 글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생계와 요청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해나가야 하는 고행의 일종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이 그러하다. 문인의 생활을 모르는 나 같은 공돌이는, '작가란 모름지기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묵묵하게 써서, 자랑스럽게 자신을 알아주는 출판사에 전달하고 그것으로 소박하게나마 먹고사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아무렴, 오로지 글만 쓰는 사람들은 오로지 그 글로만 생계를 유지해야 하므로, 직장인들이 매달 월급을 받는 것처럼 자신의 글 자체가 노동이요 돈일 텐데, 일주일이나 한 달 정도 원고 청탁이 없다면 생계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으니 원고를 부탁받으면 절대로 거절할 수 없으리라는 그림이 점점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들의 글이라는 것이 마치 덜 마른 빨래를 쥐어짜듯 본인을 정신적으로 혹사시켜 뇌를 쥐어짜거나 방 안에서 가만히 고뇌하거나, 책상 앞에서의 오랜 사색과 번민의 과정을 통해서 글을 뱉어낸다는 점인데, 그렇게 글을 써도 글이 써지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금의 나로서는 참으로 의아스럽기는 하였다. 왜냐하면 글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지식과 경험과 연륜과 여러 가지 인생의 과정들이 삶 속에 녹아들어 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일 텐데, 혹 뇌 속에 그러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뇌를 쥐어짠다고 별다른 글이 나오지는 않을 터, 아무렴 전문 작가들이라 함은 그래도 일반인들보다는 경험이나 생각도 깊고 다양할 테니 조금이라도 더 밀도 높고 가치가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그렇게 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좁은 방 안에서 발버둥 치리라는 생각을 해볼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여러모로 내가 알 수 없었던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유명한 일본의 문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는 하였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정말 상상할 수 없었던 사연과 고뇌와 나름대로의 갈등이 그 사람들을 대가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을지도 모르니까. 작가의 일상은 정말 그렇게 따분하고 집요하고 외로운 것일까. 지금 시대의 문인들도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일까. 어쩌면 작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토록 빛나는 몇 줄의 글과 작품을 위해서 온몸을 불사르며, 말 그대로 자신을 연소(燃燒)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돈과 명예와 재물과 안락함과도 맞바꾸지 않은 그들의 열정을 위로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헤스의 고백록 / 194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