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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ug 08. 2022

헤스의 고백록 / 1947

범우사 2006년 국내 초판 번역본 발행.

  그의 이름은 '루돌프 프란츠 퍼디난드 회스(Rudolf Franz Ferdinand Höss)'.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운용하였던 집단학살 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소장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유태인 학살극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 하루에 수천 명씩 재가 되어 사라지는 현장에서 온갖 비극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경험하였으면서도 끊임없이 학살을 지시하고 효율적인 시체 처리를 위하여 고심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였던 집행자(책에서는 한글 '헤스'로 표기되고 있지만, 사실 '회스-Höss'로 표기했어야 하는 것이 맞다. 원래 '헤스-Hess'는 히틀러의 초기 비서관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과는 다른 인물이다).


  전쟁의 종말이 다가오는 1945년 봄, 회스는 히틀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SS의 최고수장인 히믈러의 최종 지침을 받은 뒤 이름을 바꾸고 나서 도주한다. 그러나 1년 후 영국군에 의해서 발견되어 체포되었으며, 1947년 폴란드 최고 인민재판소에 의해서 사형 판결을 받고, 자신의 근무지이자 유태인 학살극의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 화장터 앞마당에 설치된 교수대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 책은, 루돌프 회스가 처형당하기 전 구금되었던 폴란드 크라쿠프 구치소에 있을 때 작성한 회고록이다. 학살극의 한가운데에 있던 사람이 스스로 고백하는 수기라는 점에서 매우 희귀하고 주목할만하다. 1946년 말부터 1947년 초반 처형당하기 전까지 작성한 이 회고록에서 회스는 담담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으며 최대한 구체적으로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계획들과 과정들을 차근차근 풀어놓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자신의 성장과정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족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 나치당에 가입하게 된 계기 같은 것들이 여러 가지 인과관계들의 맥락 속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타자화하여 한 명의 악마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글은 일목요연하고, 체계화되어 정리가 되어있으며 사건과 감정의 서술에 있어서 수준 높은 필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하게 바라볼 수 있으며, 그것을 유려한 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욱 공포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가 서술하는 유년시절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들이 신부가 되기 원하는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가정 내에서는 웃음과 유머가 없었으며, 부모의 명령에 대한 철저한 복종이 요구되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하는 확실한 의무감이라든지, 주어진 것을 충실하게 완수해야 하는 압박감이 지배적인 가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외톨이였으며, 주변에 이야기할만한 상대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나무나 숲 같은 '자연'이라든지 혹은 근사하고 멋진 말 같은 '동물'에 호감을 가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의 양친 사이에는 상호 이해와 존중이 충만한 차분하고 애정 어린 관계가 성립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두 분이 서로 친밀하거나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다. 또한 두 분 사이에서 큰소리로 욕지거리를 하거나 흉을 보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보다 4살과 6살 아래인 누이동생들은 어리광이 심해 언제나 어머니에게 매달렸지만,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떠한 다정한 표시를 보이는 것도 단호히 거부했다. 그것이 언제나 어머니와 큰어머니의 친척들의 불평의 씨가 되었다. 겨우 한 번의 악수와 몇 마디의 감사의 말은 모두가 나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었다. 나는 양친을 아주 좋아했는데도 동심을 압박하는 크고 작은 고민을 그들과 나눌 방법을 아무리 해도 찾지 못했다. 나는 그런 일들을 모두 스스로 처리했다. 내가 마음을 허락한 유일한 상대라면 한스(회스가 일곱 살 생일 때 받은 검은 말)였다.


  그가 군인이 된 과정도 흥미로운 부분인데, 종교인이 되기를 원했던 부모의 갈망은, 한 사제의 실수를 통해서 회스에게 강력한 염증을 유발한다. 결국 그는 1차 세계대전 발발과 더불어 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 내가 보기에는 엄격함과 철저함을 중요시해야 하는 사제의 일그러진 모습에서 오는 괴리가 그를 규율과 통제가 지배하고 있는 군대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군인으로서 인정받았고, 체포와 구금이 반복되는 지난한 고통과 인내를 통해서 자신을 혹사시켜가며 단련하는 법도 배운 듯하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그는 평소 관심을 갖던 목가적인 삶을 위하여 결혼함과 동시에 농장을 운영하면서 사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결국 히믈러의 권유로 SS(친위대)에 가입하게 되고,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이후부터는 그가 친위대 생활을 하면서 겪고 느끼고 생각하였던 것들이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전개된다. 자신과 연관이 있는 수많은 친위대 간부들의 성격과 장단점들, 그리고 당시 독일이 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을 종류별로 구분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전쟁 리포트를 보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그 범죄의 현장 가운데에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기사를 쓰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러한 내용은 그의 차갑고 객관적인 성격과 당시 독일에 만연해있던 타인에 대한 고통에 대하여 공감을 거부하는 인종차별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스의 글은 차분하고 질서 정연하고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나치의 눈에 보이는 존재가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인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국내에서의 비국민의 말살은 외부의 전선에서의 적을 전멸시키는 것과 완전히 같은 의무이며 그러므로 절대 비난할 일이 아니다.  (테오도르 아이케, 장교회의 연설 중)


  그는 다하우(Dachau)와 작센하우젠(Sachsenhausen) 수용소 근무를 거쳐, 1940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에 임명된다. 그 이듬해 7월, 히믈러는 총통의 명령이라고 하여 각 하부 명령체계를 통해 유태인 절멸 지시를 내린다. 1941년 7월 이후부터 아우슈비츠는 그야말로 유태인을 제거하기 위한 살인 공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자그마한 부대용 막사 수준의 아우슈비츠는, 수십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별도의 부지를 선정하여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라고 하는 거대 절멸 수용소로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아우슈비츠에서는 가스실과 화장터를 활용하여, 최대 24시간에 9,000 명의 유태인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수치로 환산하면 한 달이면 30만명이고, 1년이면 300만명에 해당한다. 3년도 안 되는 기간에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최소 백만 명 이상의 유태인 학살되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학살의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에 이르면, 점점 이 책을 읽기가 힘들어진다. 회스는 여전히 마치 자신이 꿈속에서 보았던 광경이나, TV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자세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수백수천 명의 죽음도 그에게는 하나의 '일상적 업무'이자 '단순한 명령이행'이었던 것이다. 그는 기억력이 좋고 표현을 잘하고 있지만,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준 몇몇 유태인들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마치 소설의 한 내용을 발췌하듯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글을 읽는 나 자신의 심장이 얼어붙는듯한 느낌일 들기도 하였다. 이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지적하였던 공감의 무능력,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력인 악의 평범성일 것이다.


더군다나 특수부대(수용소 내에서 독일군 보조를 하던 유태인을 말하는 듯하다. 수용소 사진 등을 보면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유태인 남성들이 독일군들을 도와 유태인 분류작업을 한다든지 여자와 아이들을 가스실로 이송시키는 일에 가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에 소속된 유태인이 시체 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발견하거나 혹은 가스실로 향하는 인간들 중에서 보게 된 일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어도 특수부대원은 결코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나 자신도 한번 경험했다. 가스실에서 시체를 열심히 끌어내고 있던 중 특수부대원 한 명이 돌연 섬뜩 놀라면서 뒤로 물러서더니 꼼짝도 않고 움츠리고 있다가 다시 동료들과 시체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특수부대의 우두머리에게 그자가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저기 놀라 질겁한 유태인은 시체 속에서 자기의 아내를 발견했었다는 것이다.
나는 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감지하거나 예감한 여인들이 눈에 죽음의 공포를 가득 담고도 힘을 다해 아이들에게 농담을 걸며 다정하게 달래고 있는 정경도 이 눈으로 빠짐없이 보았다. 심지어 어떤 여인은 내 곁을 지나가면서 자신의 4명의 아이들 - 어린 동생이 울통 불퉁한 길을 아장아장 걷는 것을 서로 도와주면서 서로 꼭 부둥켜안고 있던 그 아이들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속삭였다. "당신들, 어떻게 이런 귀여운 아이들을 죽일 수 있어요. 당신들에게는 마음도 없어요."
어느 여인이 문이 닫힌 순간 자기 아이를 방에서 밀어내려고 울부짖으면서 소리쳤다. "제발, 하다못해 아이들만큼은 살려줘요!" 줄지어 있던 모두의 가슴속에 죄어드는 듯한 비통한 장면은 수없이 많았다. 1942년 봄, 당시 나이가 한창이던 젊은이들이 농가의 꽃이 만발한 과일나무 아래서 대부분은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죽음이 기다리는 가스실을 향해 걸어갔다. 생성과 소멸의 이 광경은 아직도 내 눈앞에 떠오른다.



  이 책에 거론된 수많은 사건과, 비인간적 행위를 모두 거론하기도 힘들고 상기하는 것도 힘들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특이하게 판단했던 것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의 업적이 매우 도드라지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회스를 비롯한 나치 전범들과 더불어 아이히만은 자신이 부인했던 것만큼, 결코 유태인 학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이 회스의 회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유태인 학살의 명령은 히틀러에게서 히믈러와 하이드리히에게 전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수장이 회스였던 것이고, 전 유럽의 모든 유태인을 단 시간 내에 최대한 효율적이고 완벽하게 기차에 태워서 아우슈비츠로 도착하도록 모든 계획을 도맡은 우두머리가 아이히만이었던 것이다. 즉 유태인 집단학살의 주범은 히틀러 - 히믈러,괴벨스,괴링,보어만 - 하이드리히 - 아이히만,회스 의 주요 인물 계통으로 이어져 내려옴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히만으로부터 최종적 해결에 관한 그의 마음속의 진짜 신념을 알고자 모든 방법을 써보았다. 엉망으로 취해 있을 때도 아이히만은 홀린 사람처럼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유태인들을 남김없이 말살하라고 위세 좋게 떠들어댔다. 또한 가차 없이 그리고 얼음과 같은 냉혹함으로 될 수 있는 한 빨리 학살을 수행해야 하며, 그들과의 어떠한 타협에 대해서도 훗날 준엄한 보복을 받게 될 것이라 했다.


  이념이란 무서운 것이다. 우리가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이유 또한 그러하다. 전체를 위하여 개인을 희생할 수 있다는 이념에 한번 사로잡히면, 국가는 개인에게 무엇이든 요구한다. 그리고 개인은 국가가 자신의 우상이 되고 신이 된다. 자신의 국가를 벗어난 것은 하찮은 것이 되고, 자신의 민족이 아닌 사람은 열등한 민족이 되는 것이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이것을 이용하였으며, 당시 독일 국민들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개개인들은 힘이 없고 나약하지만, 국가나 전체라는 이름으로 단결하고 뭉치면 그것이 올바른 것이건, 올바르지 않은 것이건 간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그러한 체제의 무서움과 오류를 겪고 나서 철저하게 반성하고 사죄하고 뉘우친다. 왜냐하면, 이념의 집단화, 혹은 제국주의라는 것은 힘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남용하고 싶어 하는 독재자의 욕망을 부추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헛된 이념을 위하여 섬 전체주민의 집단자결을 요구한 천황의 망령을 아직도 그리워하면서 사는 일본의 극우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 개개인의 인권이 날로 신장하고 있으며 집단적 사고방식의 굴뚝 제조업이 사라져 가는 이때에, 회스의 회고록에서 서술되는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서 쓴웃음이 나고는 한다. 집약된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인간 개개인의 고유한 권리와 의무를 중요시하는 반면에, 결코 국가나 단체의 우상화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가해자가 고백한 말을 100%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히만의 경우도 그러하였고,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나치의 전범들도 모두 하나같이 자신은 죄가 없다고 부르짖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하는 것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같은 인간이 처했던 현실을 똑바로 목도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아야 함과 동시에,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오류를 없애고 올바른 인식을 갖고 살아야 하기 때문임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이 책은 범우사의 2006년 초판 1쇄를 끝으로 절판되었다. 인터넷 서점과 중고서점에서도 구할 수가 없다. 일부 도서관에 몇 권이 비치되어 있으니, 그것을 활용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범우사는 부디 2쇄를 제작해주면 어떤가 하는 기대를 가지며, 리뷰를 마친다.



<참고자료>

칼 획커(Karl Höcker)의 아우슈비츠 앨범

https://bit.ly/3SCLIom

릴리 제이콥(Lili Jacob)의 아우슈비츠 앨범

https://bit.ly/2B8Fi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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