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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ug 09. 2022

육체의 악마 / 레몽 라디게 / 1923

Raymond Radiguet

  1903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923년 20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소설가. 프랑스 문학의 황금기에 혜성처럼 등장하였다가 불꽃처럼 사라진 수수께끼의 존재. 탄성을 자아내는 비유와 문법. 유려한 산 능선을 연상케 하는 필력. 그가 죽기 직전에 발표한 [육체의 악마]는 마치 20세기를 지배할 탐미적 문체와 극도로 섬세한 심리분석의 효시가 되었다. 짧지만 강렬한 작품. 연애소설이라는 분야가 가져야 할 그 모든 미학과 기술이 밀도 높게 응축되어있다.


  도서관에서 무심코 집어 든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적당한 두께와 강렬한 제목, 그리고 제목과 너무 잘 어울리는 나르키소스의 일러스트까지 충동대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이렇게 도서관에서 나에게 낚이는 책들은 승률이 낮은 법. 그래도 레몽 라디게는 월척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그를 처음 알았고, 완전한 팬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라디게는 어린 시절 학교에 적응을 잘하지 못한 채 일찌감치 자퇴한 이후 엄청난 양의 독서만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역시 천재들의 성장기에는 획일적 교육에 대한 염증과 방대한 다독의 바탕이 필수적인가 보다. 그의 글들은 일찍부터 인정받기 시작하였으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시 프랑스 사교계 여러 예술가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일종의 연애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1900년대 초 일본의 사소설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화자의 시선, 화법, 감정의 표현 같은 것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다. 아마도,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정도는 되어야 레몽 라디게의 필력을 떠오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한 죽음은 혼자서 생각할 때만 문제 되는 것이다. 둘이서 죽는다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조차 이미 죽음이 아니다. 괴로운 것은 생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에다 하나의 뜻을 주는 것에서 떠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이 우리 생명일 때, 함께 사는 것과 함께 죽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소설의 주인공은 '마르트'라는 여성을 향한다. 불륜과 애정행각의 자잘한 해프닝들이 소재로 쓰이지만 스토리는 그것이 전부이다. 사실 그것도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풍경이라든지 외부적 묘사 또한 최대한 배제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는 부분은 캐릭터들의 내면묘사와 감정의 흐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과 마음의 흐름을 레몽 라디게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과관계, 층층이 겹쳐진 심리를 마치 핀셋으로 한 장씩 걷어내는 듯한 느낌의 표현. 이는 한 사람의 누군가에 대한 애정과 생각이 어떠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부딪치고 되돌아오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의식의 설계도와 같다. 우리는 마치 X-ray 촬영을 하듯, 표층적으로 둘러싸인 감정과 서정의 은밀한 내막을 하나씩 걷어내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캐릭터들 간의 의도와 본질을 파헤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성이 알지 못하는 제 나름의 도리가 마음에 있다면, 그 이성이 우리 마음보다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우리 인간은 모두 나르키소스로서 자기 모습을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하지만, 자기 모습 외 다른 모습에 관해서 무관심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유사 본능이 우리 삶을 인도하고, 어떤 하나의 풍경, 하나의 여인, 하나의 시 앞에서 "정지!" 하고 외치는 것이다.
젊은 시절이 어리석다면 그런 게으름을 피워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 제도를 약화하는 것은 그 교육이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까닭에, 평범한 자들을 대상으로 삼은 데 있다. 진행 중인 정신에 있어 게으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목격자의 눈에는 공허한 날들로 보였을 저 길고 긴 나날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일이 나는 결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하루하루들을 보내며 마치 벼락부자가 식탁에서 자신의 어색한 몸가짐을 관찰하듯 나의 미숙한 마음을 관찰했던 것이다


  감각적인 유희의 심리들, 충동적이면서도 은밀한 감정. 그러나 그것들은 전혀 저급하거나 퇴락해 보이지 않는다. 레몽 라디게가 근사하게 제시하는 고전적이면서도 절제된 문체는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흔들림을 정갈하게 정리해준다. 등장인물들의 감정들은 요동치는 물처럼 자유롭지만, 라디게는 그것을 투명하고 네모난 수조에 가둔다. 그리고 그 모든 비정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서사의 수조를 완전히 지배한다.


그의 비극은 주인공 자신에게서보다 주위 상황에서 생긴 것이다. 기거에는 전쟁이 원인인 방종과 무위가 한 청년을 어떤 틀에 집어넣고 한 여성을 죽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되리라. 이 자그마한 연애소설은 고백이 아니다. 한층 더 고백처럼 보이지만 더욱 그렇지 않다. 자신을 책하는 자의 성실함밖에 믿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인간적인 결점이다. 그런데 소설이란 것은 인생에 있어서 드물게밖에 존재하지 않는 입체적 두드러짐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장 진실처럼 보이는 것이야말로 허위의 전기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레몽 라디게가 1923년 누벨 리테레르에서 작품을 소개한 글)

  


  레몽 라디게는 희곡과 몇몇 기고글 이외에 '육체의 악마'와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 두 편의 소설만을 남겼다.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는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과 같이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분위기가 비슷하고, 오마주의 느낌도 나기 때문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아닌, 동서문화사에서 출판된 책에는 이 세 가지 작품이 모두 같이 실려 있으니, 프랑스 심리소설의 진수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요절한 천재의 짧은 생애를 추모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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