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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Sep 30. 2022

소송 / 프란츠 카프카 / 1925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 '소송'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와 현대의 경계를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물음을 상기시키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보다도 무려 30년이나 앞선다. 고전적인 스토리 구조를 과감하게 뛰어넘어, 환상적이면서도 재미있고 풍자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이 상징 가득한 명작의 법정에 들어서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다. 기이한 풍경과 난센스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가 꿈을 꾸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알고 보면 알게 모르게 감시를 당하고 문명의 이기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카프카 사후 1925년에 발표되었지만, 실제로는 1915년에 쓰였다. 그의 절친이었던 막스 브로트에 의해서, 자신의 미완성 원고들을 모두 불태워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어기면서까지 출판된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비록 짧지만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았던 카프카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쩌면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라도, '소송'이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것이 오히려 이해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미완성이지만, 카프카가 집필할 당시 처음과 결말을 먼저 마무리해놓고 중간의 에피소드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러티브가 아니다. 그가 현대인의 자화상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체모를 거대한 권력과 집단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구속되는 시스템. 인간 각자는 보이지 않는 고삐에 붙들려 자유롭게 유영할 수 없다. 겹겹이 둘러싸인 수많은 바운더리와, 언어가 전달되는 명령체계는 개인을 자유롭게 놔두지 않는다. 결국 이 소설은, 살아있는 한 그 무엇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구속적 숙명에 대한 토로이며 풍자이다.


  전개 방식 또한 신선하다. 우리는 작가의 천재성을 비극보다는 희극적 요소에서 발견하고는 한다.  소설은 아무런 죄가 없을  같은 주인공이 어느  느닷없이 체포되는 장면으로 무게를 드러내고 있지만, 사실 등장인물들의 코미디와 난센스적 행동, 주인공의 조롱 섞인 말들과  가쁜 잔머리로 인하여 엉뚱하게 작품헤집어진다. 마치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 일상을 살아가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고통받고 회복하면서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작품을 무겁고 진지하고 난해 하다기보다는, 흐름을 가진 해학과 풍자의 블랙 코미디로 해석한다.


  주인공이 마주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주인공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즉, 상대방이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다거나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구속되고 감시당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고, 함부로 벗어나려 했다가는 더 큰 손해를 입을 것이니 인간은 숙명적으로 모두 재갈과 올가미를 내 몸의 일부로 삼고 살아야 한다고 체념하는 듯하다. 작품 전체를 통하여 주요 인물들의 소심함과 비열함, 나약함과 이기심이 포진해있다.


  카프카가 이 작품을 통하여 드러낸 시각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인식을 관통한다. 문명을 구축하고 살아가는 인류는 조직화되고 체계화되어야 할 당위성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효율과 첨단과 이기의 혜택은 우리에게 익명성을 거두어들이는 셈이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남발되는 각종 고소고발 건들과, 커다란 국가권력에 의해서 난도질당하는 반대 정치세력들의 운명들, 빅데이터 수집을 목표로 하는 거대기업의 큰 손 아래에서, 인간 개개인들의 정보와 존엄성은 한낱 자본의 계량도구일 뿐이다. 카프카는 1915년에 이것을 감지한 것이다.


  이 난해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불친절하고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가볍고 진지한 삶을 고찰해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구속되어 있는가. 나는 어떠한 존재와 가치에 소송당하고 있는가. 그 소송은 내 신체의 일부인가. 아니면 떼어낼 수도 있는 것인가.


"모든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을 다만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울한 의견이로군요." K가 말했다. "허위가 세계질서가 되어 있으니까요."


  한창 공부를 하고 있는 청소년과 학생들이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물론 그들은 훗날, 성인이 되고 나서 마흔 즈음을 넘긴 후에 다시 읽어야 한다.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 또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읽으면 슬픈 생각도 들 것 같은 작품이다. '소송'을 제대로 읽었다면 카프카의 여러 초상과 사진 속 표정 들에서 그의 고독과 슬픔과 불안과 좌절을 발견할 수 있다.


  '소송'과 관련하여 조지 오웰의 1984 소설과 동명작 영화도 추천한다.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져 헤드는 '소송'의 느낌을 간직한 컬트무비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1968년작 영화 '악마의 씨(Rosemary's Baby)' 또한 피해자와 피의자들 사이에서 보이는 이기심과 악마성을 느끼기에 좋은 영화이다.


영화 1984,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 조지 오웰의 1984 원작.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악마의 씨(Rosemary's Baby)
데이비드 린치의 전설적인 컬트무비, 이레이져 헤드


이렇게 유명한 작품을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야 읽게 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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