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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Oct 08. 2022

일하는 아이들 / 이오덕(엮음) / 1977

  우리말과 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데 일생을 헌신한 이오덕 선생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해본다. 이오덕 선생은 '우리 글 바로 쓰기'라는 저서로 매스컴에서 한 때 관심을 받았지만, 일반인들은 거의 대부분 그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미디어에서 외면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근 50년간 군사독재에 항거하여 민주화를 이룩하던 사람들의 시대가 주를 이루었던 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사의 위인들에는 문학가가 누락된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그런데 최근 유시민 작가에 의해서 이오덕 선생이 여러모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 같은 공돌이는 나이 먹고 뒤늦게 문학에 빠져들어 이제 한창, 글을 잘 써서 유명해진 거장들의 네트워크를 헤매면서 즐거운 40대를 보내고 있는 중이지만, 눈대중으로 인문학에 빠지다 보니 진작부터 알고 있어야 했을 작품들이나 문인들에 대해서 그 순서가 뒤바뀌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나마 지금에서라도 이오덕 선생을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행운아라 여기지 않을 수 없겠다.


  이오덕 선생은 '우리 글 바로 쓰기'라는 책을 통하여, 우리가 쓰는 말과 언어 속에 들어와 있는 일본말과 한자말, 그리고 온갖 외래어의 범람 속에서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알려주려고 노력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한글이라는 고유언어를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우리 것을 사용하도록 주장하셨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과 우리의 언어가 서로 동떨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평생 연구하고 교육하신 분이다. 그러한 사람이 오래 교직에 있는 동안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이 쓴 글을 직접 선별하고 엮어서 책을 만드셨으니, 내가 이 책을 이번에 발견하고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말로다 하지 못할 감동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예전에 동시집 2권과 할머니들의 시집을 소개한 바 있는데, '일하는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속세에 오염되거나 어른들의 허세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시골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과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숨은 보석 같은 작품인 것이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은 대체로 50-70년대의 시골이다. 시를 쓴 사람들은 모두 당시 이오덕 선생이 근무하던 시골 국민학교의 학생들이다. 그러하니 전쟁 이후 너무도 힘겹게 살던 시절의 생활상이 곳곳에서 표현되고 있고, 거기에서도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보이는 소망과 기쁨, 원망과 고통 같은 감정들이 서로 교차하여 아주 반짝거리면서 아무런 포장과 위선도 없이 보이는 그대로 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이 어린아이들의 여러 시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너무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어볼 수 있었다. 단어 하나하나, 사투리 하나하나, 그 속에 안개와 아궁이와 들풀과 소의 울음소리와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의 땀방울과 구슬픈 눈물과 아름다운 하늘과 구름 그리고 낡고 오래도 책상 위에 꺼내어진 투박하고 거친 모습의 보리밥의 형상이 다채롭게 그려진다. 한 페이지 한 작품을 넘길 때마다 나의 머리는 그 시절의 그 장면을 연상하느라 분주하였고 나의 눈은 아이들의 슬픈 일상을 쫓아가다가 촉촉해지기 일쑤였다.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의 눈과 언어를 통해서 어른이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나도 딸을 키우면서 왜 어른이 아이로부터 배워야 하는지 매번 통감하면서 육아를 하였다. 어른이 아이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은 성서에서나 나올법한 한낱 진부한 격언이 아니다. 그 논리는 오히려 현실적이고 공학적이고 효율적인 체계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에두르거나 번듯하게 포장하거나 그럴싸한 허세로 위장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러한 허세의 능력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소망과 아픔과 기쁨과 슬픔을 자신의 손과 입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표출하는 능력이 있다. 이는 속세에 오염되지 않고 인간관계의 냉정함에 찌들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세심하고 주의 깊게 아이를 관찰하고 지켜보면서 키워본 사람만이 안다. 나는 이 책 속에 숨어있는 아이들의 글을 그 어떠한 내로라하는 어른 작가들이 함부로 흉내 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는 머릿 속에 무언가 이미 들어와있는 사람들이 함부로 흉내 낼 수가 없다. 어린아이가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인 것이다.


  이 진주 같은 책을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던 이번 주 연휴가 나에게는 행복이 될 것이다. 나의 기쁨과 안식은 이 작은 책 속에 숨겨진 아이들과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 유별난 타임머신을 타고 나는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할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몇 편의 작품들을 소개해본다. 





-필통-

연필이 일을 하다가

따뜻한 엄마 품에

가만히 누워 있다

(김순규 길산 4학년 / 1976.11)


이 짧은 3줄의 시 속에, 시골에서 힘들게 일해야 하는 아이들의 노곤함이 묻어난다. 나는 비록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당시 시골에서는 아이들도 부모를 도와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해야 했으며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이는 연필도 마찬가지로 자기처럼 일을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고, 필통 속에 가지런한 모습을 하고 있는 연필이 마치 논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방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표현된 것으로 느껴진다.. 농사의 고단함과 가정의 따스함이 교차되어 느껴지는 짧고 아름다운 시이다.






-풀-

독 새에 풀 한 포기 억지로 삐저나와 해를 보려고 동쪽으로 고개를 드는데, 동생들이 호매로 쪼아 가면 그 풀뿌리는 또 억지로 나오니라고 얼마나 외로이 얼마나 애를 먹을까?

(김용구 청리 4학년 / 1964.3.7)


농사를 짓는 시골에서는 풀 한 포기라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예전 대학시절 농활 때, 시골 할머니들이 농작물들이나 가축들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표현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시골에서 성장한 유명한 작가들의 에세이들에는 흉년이 들거나 자연재해로 추수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농부들의 처절한 고통이 종종 드러날 때가 있다. 이 시를 쓴 아이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생각을 했을 것이고, 해를 쫓아 성장하고픈 생명의 고통을 자신의 감정과 동일시하며 표현한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개와 복숭아-

개가 어디서 복숭아를 하나 따 가지고

우리 집으로 와서 먹는다

아주 맛있게 먹는다

먹는 소리가 새근새근 난다

하도 맛있게 먹어서 

나도 뒷산에 올라가

복숭아를 하나 따 먹어 보니

아주 맛도 없었다

(이재흠 대곡분교 3학년 / 1969.6.8)


이러한 표현은 어른이 절대로 쓸 수 없다. 상식적인 생각을 하는 어른들은 개가 복숭아를 물고 온다는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특이한 상황을 직접 목격한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욕망을 통해서만 쓸 수 있는 글이다. 마지막의 '아주 맛도 없었다'라는 문장 또한 겉멋이 들지 않은 어린이들만 쓸 수 있는 아주 투박하고 직관적인 문장이다. 시는 이렇게 써야 읽을 맛이 난다. 개도 이쁘고, 아이도 귀엽고, 나의 상상도 모두 즐겁기 때문이다.






-어머니-

잠자다가 잠결에

어머니가 없다고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한참 생각하니

어머니가 병원에 갔는 것이

생각났다

아, 어머니가 병원에 갔지!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권종진 대곡분교 3학년 / 1969.11.12)


가족애가 깊은 시골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로 느껴진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내용 같지만, 잠을 자면서도 가족을 생각하는 모습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강조된 것은, 당시 힘든 일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던 시골 여성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 것이리라. 어머니가 병원에 있다는 것은 고된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고, 생각을 더듬고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낀 것은 효심의 일부로 보여서 애특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눈물-

학교에서 점심시간만 다가오면

나는 눈물이 난다

그래도 동무들이 보는 데는 울지 않아도

나 혼자 울 때가 있다

우리 집에는 양식이 없어

밥을 먹지 않을 때가 많다

집에 돌아와 보면 동생들이

배고파서 울상을 하고 있다

점심도 나물죽을 끓여 먹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산수 예습을 하면서 나는

공부만 잘하면 제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나의 눈에는

또 눈물이 비 오듯 하는 것이다

(이달수 청리 5학년 / 1963.4.29)


60년대 시골의 빈곤한 생활상이 절절하게 배어 나오는 글이다. 내용 중에 일기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글을 쓴 아이는 그래도 고단한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동생들의 형편까지 되새기고 있다. 참으로 먹먹하고 아름다운 글이다. 지금은 칠순이 되었을 이 어린아이가 부디 당시의 설움을 딛고 행복한 인생의 노년기를 맞이하리라는 바람만 가득할 뿐이다.






-아버지-

아버지는 술만 잡수시고

일을 하지 않는다

어제는 쌀 한 되 가지고 가서

그 쌀로 술을 사 먹었다

나는 울었다

아버지는 술을 먹고 와서

나를 때렸다

(여학생 김룡 6학년 / 1972.7.20)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의 시골의 부족한 가정에서 자란 여자아이는 그 예민한 감수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어려서 얻은 상처와 고통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50-60년대에 태어난 나의 선배들과 그 이전 세대들이 그 당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글을 통해서 필자의 고통이 나에게 전해질 때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글이라는 것은 그러한 힘을 지녔다. 부디 어려운 역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올바르게 성장한 아이를 머릿속으로 행복하게 상상할 뿐이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날마다 된 일을 하신다. 빨래하고 밥짓고 뽕 주고 아주 바쁘시다. 어머니 생각하면 슬프다. 오늘 아침 학교에 올 때도 어머니는 뽕을 쌀고 있었다. 어머니 마음은 언제나 외로운 것 같다. 어머니 죽으면 우째 살까. 어머니 잃은 아이가 우리 동네에 있다. 그 집에는 언제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성을 내고 울고 아주 슬플 때는 가만히 운다. 그 집 아이가 내 동무다. 나는 가한테 어머니 보고 싶지, 하면 눈물을 흘린다. 그때 한 번 나도 눈물이 났다. 동네 사람이 불쌍하다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이순희 청리 4학년 / 1964.5.25)


난다 긴다 하는 유명 감독들의 영화를 봐도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신파 가득하고 클리쉐로 범벅이 된 드라마도 나의 눈물을 가져가지 못한다. 나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 글, 나의 감동을 어루만져주는 글은 아이들의 속 마음에 깊게 숨어있는 작은 것들이다. 밖으로 터져 나오는 그럴싸한 세상의 것들에 식상해지고 지칠 때 우리는 아이들 마음속에 조용하게 숨어있는 작은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참으로 감동적인 글이다.






-우리 오빠-

나는 오빠가 보고 싶어요

남의 집에 일꾼을 들었는데

우리 오빠 고생하는 것 보면

참 눈물이 납니다

아래 저녁에 왔는데

참 뱃작 말랐는 걸 보고

나는 어머니하고 울었습니다

(정점열 공검 2학년 / 1958.12.2)


58년도 12월이면 겨울이었을 텐데, 아마도 글을 쓴 여아이는 당시 어려운 사정 때문에 남의 집에 일꾼으로 가게 된 오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춥고 깊었을 것으로 보인다. 단어 하나하나 그 마음과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뭉클한 글이다. 한참을 먹먹하게 읽으면서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무-

어머니께서 한 번도 안 해 보던 나무를

깊은 산속에 가서 해 올라 하신다

나는 가슴이 덜컹했다

언니도 나도 동생도 다 같이

엄마는 집에 있어!

우리가 가서 나무해 가지고 올께 엄마

하니까 엄마는 막 꾸중하신다

학교는 안 가고 나무하러 가나?

아예 그런 소리 말라 하신다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엄마가 저런 고생 안 하실 텐데,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정명옥 청리 6학년 / 1963.4.2)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토끼 같은 3형제의 마음속에서 효심으로 승화하여, 남자들이 해야 하는 일까지 하게 된 어머니를 밝혀주고 있다. '가슴이 덜컹했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아이들도 무언가 평상시 같지 않은 일이 어머니의 행동으로 나타난 것을 직감하는 것이다. 이 따스한 가정의 감정읜 '눈물이 나왔다'라는 6글자의 짧은 문장으로 모두 표현이 된다. 이런 시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스해지고 나에게 주어진 생,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과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참고>

유시민의 알릴레오 북's 74회 https://youtu.be/v-jkDl08kvw

유시민의 알릴레오 북's 75회 https://youtu.be/PMx0S8ojZmw

보석같은 동시집 2권 https://brunch.co.kr/@silverback/102

할머니들의 기억모음 https://brunch.co.kr/@silverback/10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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