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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Nov 29. 2022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 서울신문

  일반적으로 공공도서관에는 항목별, 주제별로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여성인권 및 복지와 관련한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2018년 9월 서울신문에 기획 연재된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이라는 글을 모아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지은이는 서울신문의 탐사팀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에는 중증 장애를 안고 태어나거나, 심각한 중병을 얻게 되어 가족들의 극진한 간병을 필요로 하는 경우들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사례들은 간병의 한계적 상황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병자를 살인한 경우들을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데이터와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기자들의 논고는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인터뷰들이 대화체로 실려 있어서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해당 사건과 당사자의 입장에 한 걸음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또한 애써 외면하려 하는 세계의 그늘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 어쩌다가 힐끗 되돌아보는 그 반대편 세계의 바닥은 생각보다 깊고 어둡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섞여서 살아가고 있지만, 웃음과 죽음의 간극이 불과 30cm도 안 되는 아파트의 벽 하나를 공유한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은, 첨단문명의 삶을 사는 우리의 인생이 그만큼 얇고 가파르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는 바로 3~4m 떨어진 옆집에 사는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서로 어색하여 불편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아내 간병과 투정에 지친 정씨가 잠시 집을 비우면 아내는 펑펑 울며 서운해했다. "번개탄이랑 삼발이, 쟁반, 햇빛 가리개 좀 준비해줘, 제발..." 마음의 병이 깊어진 아내는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떼를 썼다. 설득하고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죽기 적당한 자리를 찾겠다며 정씨에게 종일 운전을 시켰다. 이런 일이 10개월 넘게 반복되었다...... 비가 세차게 내렸다. 밤 10시 인적인 드문 시골길에 차를 멈춘 정씨는 햇빛 가리개로 앞유리를 가렸다. 독한 양주와 함께 수면제를 먹은 아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수십 번을 망설이다 결국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모질게 마음먹고 차 밖으로 나왔다. 손이 떨리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가 나올 수 있게 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 도망치듯 길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고통스럽진 않을까, 문을 열어뒀으니 빠져나오지 않을까.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 하여 법정 실형을 선고받지만, 가족들의 호소와 그간의 간병기록과 노고들이 참작된  감형이 되어 2년에서 5 이하 정도의 복역을 마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가정의 고단한 개인사를 법정의 판결로 수치화할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가해자들은 모두 극도의 죄책감과 후유증으로 인하여 온전한 삶을 살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책은, 우리가 인식하고 살아가는 일상에서 흔하게   없고 외면되어 있는 부분 구석을 차분하게 비추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나, 중증환자를 간병하면서 사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일생을 포기한 채 십수 년간 간병에만 매달리게 된 사람이나, 급기야 환자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간병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환자를 살인까지 이르게 된 사람의 입장에 서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 나에게만 해당되지 않으면 되는 세계의 진실은, 의도적으로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확인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려 하는 행위가 없으면 절대 다가오지도 열리지도 않는다. 이 시대의 첨예한 완벽주의와 개인주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악행으로 낙인찍히는 척박한 공동체 속에서, 낙오와 장애, 비정상과 불편함은 숨겨야 하는 것, 혼자서 떠안고 가야 하는 개인의 짐이 되어버렸다.


다섯 살 터울인 작은 아들에게도 (장애가 있는)형은 굴레였다. 이를 지켜보는 허씨 마음은 미어졌다. 허씨는 둘째가 불행했을 거라고 했다. 형이 발달장애를 겪다 보니 가족이 화기애애했던 적이 없었다. 실제로 둘째는 장애가 있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느냐며 상대 부모가 반대한 것이다. 이를 지켜봐야만 했던 허씨 심정은 어땠을까. 그에게 둘째도 눈에 넣어 아프지 않을 아들이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지면 하나하나에 생에 작별을 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체념과 고통, 저항할 수 없는 분노를 껴안은 슬픔같은 것이 계속 밀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이 당면한 과제들을 곱씹어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급격하게 들이닥칠 고령화 사회의 문제와, 완벽하게 무너져 내리는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결혼관의 경계선에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도덕적 가치들이 새로 양산될 것이다. 인간의 목숨이 어떠한 양태로 존중되고, 그 가치가 한 국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존중받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일반인이나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주변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외면하려는 세계에 하루하루 치열한 생존의 시간을 움켜쥐면서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의 기능이란 그러한 것이다. 인문학의 목적이란 나와 동일한 사람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남겨진 가족애는 보는 이들을 더 슬프게 한다. 2016년 3월 30일 강원도 춘천시 중도동 강변의 승용차 안에서 발견된 70대 노부부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숨져 있었다. 장소는 강변에서도 특히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이 부부는 사망 전 자녀들이 보낸 생활비를 다시 되돌려보냈다. 한 80대 노모는 정신질환을 앓아온 40대 딸과 끈으로 몸을 묶은 채 한강에 투신 했는데 꼭 껴안은 팔 모양 그대로 발견됐다. 식물인간 아들을 25년간 돌보다 집에 불을 질러 함께 목숨을 끊은 50대 아버지의 사건을 담당한 소방관들은 '시신이 한구'라고 보고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꼭 껴안은 채 한 몸처럼 발견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라도 이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기록해야 한다. 기록 속에서 심각성을 깨닫고, 간병자살을 방지할 대책을 이 사회가 진지하게 강구해야한다.


  의도치 않게 장애나 중병을 떠안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과, 치열하게 간병의 고통을 안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위로하며 소개를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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