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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Dec 13. 2020

보석 같은 동시집 2권

   와하...... 이런 보석이 숨어있었다니!


   깊은 감명을 주는 책 한 권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초등학교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티 없이 맑은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집을 2권 소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 기분이란....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는 것이겠지만,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려가며 채워 넣는 것처럼, 어린 생명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투명하고 귀엽고 아름답고 신비롭다. 무엇을 원할지, 어떠한 행동을 할지, 어떠한 기분일지 어른들의 눈에는 뻔히 보이는 그 동심의 세계는, 사실 어른들이 동일하게 겪은 과정임에도 이미 그 시간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는지 혹은 너무 오염되어 기억의 시야가 뿌옇게 변색되어버렸기 때문인지 아무튼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 나도 어린아이였을 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초적인 욕구와 작은 탐욕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생명들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첫 번째 작품집은 2007년에 발행된 '쉬는 시간 언제 오냐'이다. 지은이는 '초등학교 93명 아이들'이고, '휴먼어린이' 출판이며, '전국초등학교국어교과모임' 엮음이고 그림은 '박세연'이다. 인터넷에서 유난히 마음에 오래 남는 동시가 하나 있었는데, 그 시의 출처를 찾다가 결국 이 작품집에 실린 동시였다는 것을 알고선 뒤늦게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작품집은 2013년에 발행된 '벌서다가'이다. 역시 '초등학교 93명 아이들' 지음이고 출판사 엮은이는 동일하며 그림은 '정문주'이다. 내가 첫 번째 작품집을 여러 사람에게 추천하였더니, 누군가가 이러한 책도 있다고 알려줘서 냉큼 구입하게 되었다.


  두 작품집 모두 전국의 여러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쓴 글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고, 인위적이거나 보탬 없이 있는 그대로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 값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너무 터무니없고 단순하고 별 볼 일 없는 글들이겠으나, 마음의 근원을 찾아 생명의 신비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하게 되는 폭소도 숨어있을 것이다. 부대끼며 하루를 보내고, 아이들을 재운 후 잠들기 전 1시간 정도의 고요하고 여유로운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라. 그리고 이 책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보라. 이 작은 아이들의 세계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마음과 기쁨과 슬픔의 고향이 숨어있다. 아래 몇 작품을 소개해본다.




혜수가 이사를 간다.

만난 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사를 간다

혜수 좋아하는 남자는

얼른 고백해야한다

윤수진(5학년)




나는 그 애만 보면

무조건 놀린다

아니면 

무조건 때린다

그러면 그 애도 나를 때린다

그때는 아프지가 않다

홍승기(5학년)




눈이 답답하다

눈곱은 없는데

현태는

"눈 작아서 그런거야!"

나는 조금 생각해보고

현태 말에 동의했다

그래도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다

오승태(5학년)




우리 엄마가

신발 사려고

시장에 있는

신발 가게를 갔다

신발 가게 아저씨가

우리 엄마보고

언니라고 한다

이상하다.

많이 팔려고 

하는 것 같다.

윤예림(5학년)




엄마와 아빠는

옛날부터 헤어졌지만

나는 괜찮다

아빠가

내 생일에도 오고

그리스마스 때도 오고

우리들 방학 때도 오니깐

나는 괜찮다

아빠는 나를 버리지 않을 거니깐

나를 잊지 않을 거니깐

정다운(4학년)




어느 날

아빠와 엄마가 싸웠다

엄마가 먼저 돈 얘기를 했다

그래서 싸웠다

나는 울었다

동생도 울었다

황민석(1학년)




3학년 때 엄마가 아프셨다

저녁을 먹을 때

엄마한테 계란찜 해 줘, 했다.

엄마는 아픈 몸을 이끌고

계란찜을 해 줬다.

그때 엄마가

"에구, 힘들다" 하셨다.

나는 그때 일이 후회된다.

박민우(4학년)




우리 집은 

의료보험증이 없다.

그래서 아프면

다른 사람 의료보험증을 빌린다.

그럼 난 다른 애가 된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린다

김경민(4학년)




내 동생이 젖병을

눈에 끼고 잤다

이도연(2학년)




기말고사

나는 90

혜지는 96

하나는 93.5

핸드폰이 압수되었다

내 자식이 90이면

봐줄텐데....

장예지(5학년)




떠날 때 받은

단짝의 마지막

편지

옷장 속에 숨겼다.

보면

눈물이 나올까 봐.

백고운(5학년)




오늘따라 왠지

구름이 크고 푸짐하다

저걸 짜면

물이 나오겠지?

잘됐다.

목말랐는데.

김주희(5학년)




정말 내일모레가 시험이다

그날 내가 아프면 좋겠다.

태풍이 와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될 리가....

조아진(5학년)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를

학원에서 매일 본다

그 애가 

"너 나 좋아하냐?"

하고 물었다.

"미쳤냐? 내가 널 좋아하게!"

하고 소리 치고 말았다.

요놈의 주둥이 때문에 다 망했다

정현수(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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