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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by Silverback

아내는 예상 분만일에 맞추어 병원에 갔다. 통증이 와서 간 것은 아니었고, 아침에 일어나니 이슬이 확인되어 검진 목적으로 아침에 집 앞의 병원으로 혼자 갔다. 나와 장모님은 아내의 전화를 받고, 점심때 즈음해서 병원에 도착하였다. 새벽이나 지방 출장 중에 분만을 하게 되면 곤란할 것 같아서 항상 걱정을 쓰고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서울 사무실로 출근을 하던 날 분만을 하게 된 것이다.


아내의 담당의사는 남자분이었는데, 그날 다른 분만 수술이 꽤 많았던 모양인지 바쁘게 주기적으로 아내의 상태를 봐주고 돌아가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아내는 초기에는 통증이 없었으나 시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차츰 통증이 왔고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라고 도와주었다. 장모님이 같이 계셨고, 큰 처형은 나중에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증이 지속되고 저녁 7~8시 즈음해서 분만실로 들어갔는데, 담당 의사분은 집안의 급한 사정으로 퇴근하셨다고 하여 매우 짜증이 났었다. 다른 여자 의사분께서 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보이고 사투리를 심하게 쓰시는 분이었으나, 매우 능숙하고 쿨한 분위기가 있어 다소 안심이 되었다.


분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자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보호자분 들어오라고 하여 내가 들어갔다. 아이가 막 나오려고 하는 시간에 맞추어 나를 부른 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이 아내에게 아이 얼굴이 보인다고 이제 거의 다 끝났다고 하였고 그 후 1분 정도 있다가 완전 분만하였다. 간호사가 나에게 독특하게 생긴 은색의 얇고 무거운 가위를 주었고, 잘라야 할 탯줄 부분을 양 손으로 쥐고선 '가위를 깊숙이 넣어서 자르세요'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방식으로 가위질을 하였으나 미끄러지고 빗겨나가니, 간호사가 다시 한번 '가위를 깊숙하게 넣으세요'라고 반복하여 알려주었다. 힘을 조금 더 주어서 가위를 크게 벌려 간호사가 양손으로 쥔 탯줄에 바싹 붙어서 잘랐는데, 탯줄이 상당히 질기고 튼튼하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아내가 세상 밖으로 나온 딸을 보더니 그 고통스러운 과정이 한꺼번에 씻겨나가는 듯한 숨을 몰아내 쉬며 다행스럽고도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이며 들고 있던 상반신을 침대에 맡겼다.


녀석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작았고, 손목과 발목이 매우 가늘었는데, 의외로 형태가 길쭉길쭉하고 손과 발은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얼굴과 몸체가 작아서 그랬던 것 같다. 무릎과 얼굴, 그리고 발바닥 부분이 쭈글쭈글했던 형상을 기억한다. 피와 양수로 뒤범벅이 된 쭈글쭈글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 아이가 과연 사람의 모습으로 자라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명체가 이렇게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경의로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갓난아이를 왜 '핏덩이'라고 하는지 그때 비로소 실감하였다. 간호사가 스포이트처럼 생긴, 바람을 빨아들이는 기구로 코와 귀 쪽의 분비물을 흡수시키고 난 이후에 아이가 비로소 울었는데, 울음소리도 흔히 상상하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작았으나 여자아이의 특성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앙증맞고 귀여웠다.


이후 곧바로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갔고 장모님께도 아주 건강하게 잘 태어났다고 알려드렸다. 한 5분쯤 지나자 간호사가 큰 수건으로 아이를 감싸 안은 채 다시 나와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녀석은 얼굴에 물이 마른 하얀 자국을 뒤집어쓴 채 눈을 뜨고 세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준비하였던 나는 급하게 카메라를 꺼내어 사진을 찍었고 간호사는 다시 아이를 안고 어디론가 들어갔다. 그 시간이 2006년 저녁 8시 30분쯤이고 이로서 분만은 마무리되었다. 곧바로 깊은 밤 중에 병원 앞 편의점으로 가서 그 날 신문을 종류대로 모두 구입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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