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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an 29. 2023

봉우리 / 김민기

그의 목소리는 광활한 대지위에 서린 희붐한 안개이다

그의 시는 바위에 투명한 물로 새긴 열망이며,

그의 기타는 정갈하게 빛을 반사하는 아침이슬이다.


음악을 고파하는 그 누군가가,

우리만의 고유한 가요가 무엇인지 물어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김민기'라는 이름을 꺼내든다.


만약 가요라는 것이,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그 이야기를 '소리'로 풀어내는 것이라는 정의에 부합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 '한국인의 정서'

대변하는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김민기라는 예술가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누군가는,

그의 노래들을 일부러 곡해하고 억누르려 하였을지라도

그의 노래 그 자체가 가진 생명력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저절로 되살아나

사람들에게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는 감동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가수이자,

언어가 가진 생명력과 멜로디(音)가 가진 존재력을 증명하는 시인이자,

우리들의 삶과 역사를 쓰다듬고,

그 거친 결에서 인간의 온도를 끄집어내는 연출가이다.


그의 주옥같은 노래들 중에서,

'봉우리'라는 곡은 유난히 나에게 불친절했다

감미로운 멜로디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느릿한 가사의 내용이 잘 잡히지 않는다.

반면 가사에 집중하고 듣고 있노라면,

끝까지 들어내는 인내가 모자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노래는 청자를 시험하는 잣대이자,

지금 우리의 표변하는 정서를 반증하는 리트머스이다.


이 곡을 처음 접한 것은 20여 년 전이지만,

아무런 의식의 재촉 없이

단어 하나하나에 실린 감정의 무게와

삶을 관조하는 자의 시선에 서린 여운을

제대로 느끼게 된 것은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는 이 곡에서,

회상하고, 고백하고, 체념 하고, 위로하고, 희망한다.

앞으로 이 곡을 더 듣게 될 수십 년 동안

이 곡은 나에게 더욱더 색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김민기는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봉우리 -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QXKlsSOrnk&t=1086s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 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진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고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에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 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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