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WV 988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의 자장가가 있다. 일명 골드베르크 변주곡. 바흐가 궁정음악가가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백작(카이져링크)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서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바흐는 아리아를 포함한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된 악보를 전달한다. 백작은 불면증이 심한 날 밤이면, 자신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연주자(골드베르크)에게 이 곡을 자주 연주해 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누구나 피아노로 연주하지만, 작곡 당시에는 합시코드나 클라비코드 같은 고전 건반악기의 연주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합시코드로 연주한 것을 들어보면, 피아노와 동일하게 생긴 건반악기이지만 마치 기타 줄을 튕기듯 건반이 현을 튕기면서 소리를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좁고 긴 촛불들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한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양들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새롭게 각광받기도 하였다. 렉터박사의 악마적 광기와 낭자한 선혈, 그리고 그 와중에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변주곡은 잔혹함 조차도 품위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면을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악마적 욕망을 바탕으로 그 깊이를 집중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모순스럽지만,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 곡을 듣고 싶어질 때에는 영화의 해당 컷 부분이 편집된 유튜브를 찾아보고는 한다. 일종의 혼돈 속의 고요랄까....
이 곡을 연주한 전설적인 연주자들은 수 없이 많다. 기술적으로는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의 교과서적 연주가 참 맘에 들지만, 감성적으로 듣자면 단연 '글렌 굴드(Glenn Gould)'이다. 글렌 굴드의 연주는 51년 녹음앨범과 81년 녹음앨범이 유명하다. 특히 81년 녹음은 글렌 굴드 특유의 자유롭고 순수한 흥얼거림이 연주에 뒤섞여 있어서 마니아 층에게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통파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굴드 81년 연주는 이해받지 못한 기행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나는 예전에는 굴드의 81년 연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굴드의 성장과정과 음악에 대한 자유로운 정신, 그가 음악을 접하고 배울 때의 순수하고 창의적인 교육방식 같은 것에 참신함을 느껴, 최근에는 곡 자체와 더불어 연주자의 드라마 또한 음악감상에 포함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연설에도 로고스와 파토스, 그리고 에토스가 있듯, 클래식 연주에도 이성과 감성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연주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를 닮아가게 되는 특성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v94m_S3QDo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