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가. 아니면 당할뻔한 경험이라도. 이번에 전세사기 문제 때문에 4번째 사망자 관련 소식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본다. 평생을 모아 온 돈과 목숨을 악마의 술수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의 사망직전 고뇌와 상념을 헤아리고 있다 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 저릿한 비감이 비집고 올라온다. 멍하니 초점을 흐리고 허공을 쳐다보며 의식을 붙잡아본다. 최첨단 스마트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삶 속 틈새를 파고드는 인면수심의 패륜과 방종은 이 시대의 문화라는 것이 속으로는 얼마나 오염되고 타락해 있는지를 반증하는 듯하다.
오래전, 보잘것없는 인생이 운 좋게 배우자를 하나 만나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본능 때문에 덜컥 일찍 결혼부터 해버리고, 대책 없이 아이까지 하나 낳고선, 없는 실력으로 바득바득 돈을 모아 전 재산을 9천만 원짜리 아파트에 전세금으로 쏟아부었던 기억이 불현듯 솟아오른다.
의왕 내손동의 3천만 원짜리 원룸 전세에서 시작한 나의 신혼생활은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 부부 둘이서 1년에 천만원, 2년에 2천만 원을 모으면서 거지처럼 2년을 버티면 전셋값은 정확히 그만큼 올라갔다. 3천 짜리 전세가 5천이 되었고, 5천짜리는 7천이 되었다. 7천에 2천을 모아 9천짜리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아내는 그렇게 이사를 가기 싫어했다. 마치 무슨 느낌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그 집을 그렇게 들어가기 싫어했더랬다. 장모님도 와서 청소를 해주고, 여러 지인들이 축하해 주었지만 아내의 얼굴은 근 한두 달간 펴지지 않았더랬다.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였던 탓이었을까.
여차저차해서 그 집에서 2년간 버티고 있던 아내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좋은 집으로 다시 이사를 가고 싶어 했다. 1억 5천짜리 전세를 스스로 알아본 아내는 그곳으로 가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표정으로 나에게 이사를 권유했다. 기존 살고 있던 집의 9천만 원 전세금과 수중의 돈을 합치고, 추가로 5천만 원 정도 전세대출을 받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이제 살고 있던 집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평생 대출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우리는 은행으로부터 전세대출 요건이 된다는 확답을 받는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어벙벙한 부부였던 우리는, 살고 있던 집이 계약만료가 되는 시점에 집주인이 알아서 신규세입자를 구하고 우리에게 전세금을 의무적으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의 소극적 대처와 강압적 자세,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우리가 직접 신규 세입자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평소 집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쓰던 우리는, 집을 보러 온 세입자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은 그날 바로 집주인과 계약하여 이사날짜를 확정하게 된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정보에 의거하여, 신규세입자의 계약금을 우리가 다시 건네받고 그것으로 우리가 이사 갈 집의 계약금을 치르기 위하여, 집주인에게 신규세입자에게 받은 계약금을 우리에게 달라고 하였지만 집주인은 막무가내였다. 자기가 써버려서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비로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차피 신규세입자는 정식으로 계약을 했고 이사 당일 잔금을 치르면 모두 해결된다는 중개소 측의 말을 믿고 우리는 새로 이사 갈 집을 계약하고 모든 준비를 끝내기로 했다.
이사 날짜가 되기 2주 전 신규세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등기부 등본을 최근 다시 떼어보니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갑자기 압류가 걸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압류가 걸린 집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내가 확인을 해보니, 멀쩡하던 집이 압류가 걸린 것이 확인이 되었다. 원래 이 집은 전세 9천만 원에 은행 융자는 1500만 원 정도였으니, 아파트 치고는 안정적인 수준이었으므로 나는 별 걱정 없이 지내온 것이었는데, 불과 며칠 전 압류가 걸렸으니 나 같은 무지랭이는 도대체 이것이 무언가 싶었다. 중개소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집주인과 통화를 해보고 조율하겠다고 했다.
이사날짜는 2주 안으로 좁혀졌고 집주인은 며칠간 계속 전화가 안되었다. 중개소에서도 집주인 통화가 안된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사날짜가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더랬다. 혹시 이것이 전세사기인가 싶었다. 집주인과 통화가 안되던 3~4일간 나와 아내는 한숨도 잘 수 없었고 신규세입자의 입장도 고려해야 했고, 법무사라든지 변호사 등등을 연락하며 모든 정보를 알아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회사에서도 제대로 일 할 수 없었으며, 거래를 자처한 중개인을 계속 독촉하고 언성을 높이고 집에서도 노심초사로 일관했다. 가족들에게 의논을 하려고 해도, 전세나 부동산 정보에 문외한인 가족들에게는 오히려 이러한 일을 흘리는 것은 염려와 걱정을 키우는 것 밖에는 안되었다. 아내가 아는 지인의 남편이 수원지검에 있다고 하여 자문을 얻어보았지만, 일반인은 알아듣기 힘든 비현실적인 언어로 가득한 말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맨땅헤딩으로 결혼하여 평생을 모은 재산의 자취가 희미해지는 경험은 지옥과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무능한 가장을 둔 이 가정의 비극이 뼛속으로 좀먹는 것 같았다. 중개업자 측을 계속 푸시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이사 날짜가 3~4일 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중개소 측에서 집주인과 통화가 되었다고 했다. 압류가 걸린 이유는 집주인도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 중개인 말로는 아마도 세금체납으로 보인다고 한다. 집주인이 옷장사를 하는데, 세금 관련 독촉장이 몇 번 왔었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자기가 체납한 세금이 얼마인지 알지도 못했다. 은행 융자가 우선순위이고 그다음에 내가 집어넣은 전세금이 2순위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며 살았던 나는, 압류 0순위에 집주인의 세금체납과 임금체불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은행에서 설정한 근저당은 등기부등본에 그 순위와 금액이 자세하게 나오지만, 세금체납과 임금체불의 정확한 내용은 등기부 등본에 표기되지 않는다.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하고 입금을 체불하면 나라에서는 세입자의 전세금이나 은행융자와 상관없이 그것을 먼저 가져간다는 뜻이었다. 그러한 금액이 먼저 공제가 되고, 그다음에 은행이 융자금을 이자를 붙여서 가지고 가고, 그다음에 그 집이 급하게 경매로 나간다고 가정하면 보나 마나 나는 내 재산의 절반 정도는 잃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음날 집주인이 중개소로 왔다. 그간 왜 전화통화가 안되었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왔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럴싸한 거짓말은 그것 말고도 얼마든지 많이 있으리라.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신규세입자가 이사날짜에 문제없이 이사를 와야 하니, 지금 당장 압류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다. 나와 아내와 아내의 지인들과 중개인들과 거의 십 수명이 달라붙어 집주인을 독촉하는 모양새에 집주인은 소극적으로 변했다. 자기를 공격하는 것 같아서 다 관두겠다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도망갈 기새였다. 아내가 나를 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폭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도움 없이 부부 둘이서 모아놓은 인생의 흔적이 정신 나간 집주인의 안이함에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그날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거기에서 모든 결단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주인이 국가에 내지 않은 세금은 1천만 원을 육박했다. 이제 이사날짜는 3일 남았다. 집주인은 전화를 하더니, 여기저기에서 1천만 원을 만들기 시작한다. 당장 자기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신규세입자로부터 받은 계약금이 900만 원 정도는 될 텐데, 그것도 어디에 써버렸는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집주인과 이야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중개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경찰서와 검찰에 중개인을 신고한다고 협박하였다.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중개소 유리문을 계속 두드려대었고, 책상을 발로 찼다. 아내가 나를 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중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 때문에 하루종일 영업을 하지 못하였다. 바로 그 전날 까지 어떠한 죄도 저지르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고, 일반인이 체크 할 수 있는 온갖 전세관련 안정장치를 확인하면서 살았던 나는, 그날 만큼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평생에 없을 스트레스를 받은 중개인은 그다음 날, 이사가 이틀 남은 날, 어떻게 집주인을 구슬렸는지 집주인을 데리고 세무서인지 어디인지로 가서 세금완납을 하고 왔다. 그 자리에서 중개인은 등기부 등본을 출력해 주었다. 결국 압류표기는 사라졌다. 나는 신규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압류는 단순한 세금문제였고,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적의가 없고 이해심이 많았던 신규세입자 부부는 나의 설명을 고마워하였고, 정상적으로 이사오기로 약속하였다.
그다음 날 정상적으로 나는 이사를 가고, 신규세입자는 이사 올 수 있었다. 새로 들어간 집에서 하루종일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욕실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덜떨어진 머저리 같았다. 정리되지 않은 방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던 딸내미와 녹초가 된 아내의 얼굴을 보니, 나는 정말 바보처럼 살아왔다는 자책감과 더욱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반반씩 밀려왔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나는 그 때 이후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고통을 속으로 감내하며, 이 비열한 세상과 악마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보다 양심적인 세상으로 발길을 돌린 이름 모를 사망자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