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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Mar 03. 2024

그러라 그래 / 양희은 / 2021

남자 없는 집에서 여자들이 집안을 꾸려가야 했던 시절의 고단함을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러한 가정에서 자랐거든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요. 사실 알고 보면 어딘가에 남겨진 사람들이 강했던 것이고, 항상 남겨진 사람들은 여성들이었지요. 어쩌면 그 유전인자는 흔히 잉여인간의 시대라 불리던 전쟁직후, 즉 버림받아야 했던 남성들 혹은 가장들의 몰락과 더불어 시작된 여성들의 분주함과 처절함 속에서 잉태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미디어에서 항상 털털하게 웃어넘기는 모습을 보여주시던 당신의 이미지와 그 속에 감추어진 슬픔의 경계선을 찾으려 애썼습니다만,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슬픔은 슬픈 모습으로 다가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와는 반대로 우스운 모습으로 다가오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신이나 저, 혹은 여러 독자들에게 슬픔이란 어떠한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고, 극복하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발전하는 기회로 이용해야 할, 일종의 '도구'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싱거운 이야기도 아니었던 당신의 나직한 서술 속에서 겉으로 보이지 않던 고난의 깊이와 격을 갖춘 인내의 시간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오래전 어느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여주신 적이 있었지요. 저는 당시 양희은이라는 가수의 소탈한 어조를 좋아했습니다. 방송을 어색해하면서도 동네 목욕탕 평상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듯 들려주시던 당신의 이야기는 얼핏 보면 마치 그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삶의 애환들이었지만,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정적이도 않던 너털웃음의 자조 섞인 뉘앙스는 당신이 고통을 극복하는 방식의 두께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언젠가 나 또한 오랫동안 말 못 한 유년시절의 아픔을 쏟아내는 날이 올 때, 꼭 그렇게 별것 아닌 듯 투덜대면서 한 때의 쓰라림이었다는 식으로 대범하게 아픔을 다스리는 모습을 갖추리라는 의지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당신의 여러 명곡들 중에서 '한계령'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 곡은 하덕규 선생님이 만들었지만, 왠지 당신의 깊고 무심하면서도 단단한 음색이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마치 차가운 공기를 뚫고 가늘고 강한 메아리가 되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당신이 부르는 그 노래를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막상 그 가사 속에 겨울이라는 단어 한마디가 없더라도 눈 덮인 고도의 아찔한 산맥이 떠오르고는 하지요. 마치 내가 깎아지른 벼랑 끝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설원의 아련한 고통을 마주하며 뺨을 때리는 차가운 눈보라 속 먼지가 되어버리고 싶은 허무함도 느껴진답니다. 왜 저는 그리 제 자신을 가혹하게 매질하면서 살아왔던 것일까요.


산책 반경이 커지면서 드디어 동네 뒷산까지 오르던 날, 영돌이는 너무 좋아서 흥분하더니 갑자기 네 다리가 풀리면서 쓰러졌다. 그놈을 들쳐 업고 병원에 가니 의사는 간질인가 보다며, 콧잔등과 네 발끝을 주삿바늘로 찔러 피를 내었다. 그러자 영돌이는 살아났다. 내친김에 정밀검사를 하니까 한쪽 귀와 눈이 멀었다며 그래서 계단을 두려워하는가 보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심각한 발작이 있었다.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여러 번 넘어지면서 머리를 쿵쿵 계단 모서리 등에 받치고 말았다. 우리는 사지를 주무르면서 "영돌아, 영돌아!" 부르며 안쓰러워할 수 밖엔 없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목줄을 풀어주다가 "이게 뭐야?" 하면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영돌이의 목에서 목걸이를 잡아낸 것이다. 얼마나 꽉 조였는지 풀기도 힘든 그것은 아기 때 매어준 개벼룩 방지용 목걸이였다. 세상에...... 이런 걸 매고 죽지 않은 게 용했다. 긴 털에 가려져 여러 번 목욕을 시키면서도 몰랐다. 혈관을 있는 대로 조이던 어린 날의 목걸이를 벗겨주니 비로소 살 만해졌는지 영돌이는 하루가 다르게 인물이 나면서 잘 자랐다. 나는 영돌이의 멋진 긴 털에 가리어져 아무도 몰랐던 그 목걸이를 보면서, 내 삶에도 틀림없이 저렇게 중요한 부분을 옥죄로 있는 편견, 열등감, 자격지심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품고 살지 않는가? 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 마음속 깊이 그대로 있다. 스스럼없이 내 속의 어린아이를 만나 위로하고 화해할 수 있을까?  (본문 中)


당신의 노래는 구슬프지만, 당신의 방송활동과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생활과 노래, 혹은 삶과 직업이 그리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가수라는 직업의 독자성과 가족을 챙기려는 삶의 일상성이 항상 연결되어 있어서, 당신의 노래는 언제나 삶에서 멀리 동떨어진 허무 속 안개 같은 것이 아니라, 질기고 튼튼한 종아리의 힘줄 같은 것이 되어 여러 번 쓰러지고 다쳐도 다시 나의 육신을 일으켜 세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양희은이라는 가수가 소화해 낸 여러 명곡들의 품위 있는 가사들도, 먹먹하고 울림이 강한 멜로디들도 모두 고난을 딛고 일어선 당신의 어린 시절과 오랜 삶의 시간들 속에서 녹여 나와 공중으로 분해되지 않고 듣는 이들의 의식 속에 솔직하게 전달되어 삶의 무게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콘서트나 방송을 끝낸 가수 양희은이 집으로 돌아와서 아주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부분을 찬찬히 읽어봅니다. 그러면 그 속에는 일상을 공유하는 여러 방향의 동반자들이 마치 옆 동네 이웃들처럼 평범하게 움직이고 있고 생각하고 만나고 소리 내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당신은 친구들의 꾸밈없는 웃음과 수다를 좋아하시죠?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절친이라는 믿음이 있고요. 길가에 버려진 아기고양이를 보았다면 하루종일 머릿속에 맴돌고 그렇잖아요.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은 당신. 어려서 맞닥뜨린 운명의 트라우마를 노래로 승화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가수. 이 세상이 나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오건 나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것이고, 내가 행복을 느끼는 방향으로 거두어들이겠다는 의미. 그것이 마치 책 제목의 "그러라 그래"라는 독백처럼 독자인 나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사연은 차마 말 건네기가 더 어려워 음악으로 답변을 대신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인생 무게에 비하면 말은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본문 中)


노래란 가사를 음미하면서 듣는 것이라고 나에게 일깨워준 가수. 가사도우미를 쓰지 않는 억척스러운 주부의 역할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일상의 끈을 놓지 않은 소시민. 수많은 삶의 애환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공감해 주는 방송인. 오늘 하루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한층 성숙해지고 노련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픔을 제 살 속에 박아 파고들게 하면서 스스로 괴로워하던 나에게 당신의 기록들은, 고통이 연마한 빛깔의 성숙한 결과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노래 잘 듣고 있어요. 건강하게 앞으로도 계속 아름다운 목소리 들려주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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