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을 드러내는 장막이다
대지를 사정없이 짓누르는 태양이 물러나면
검푸른 대기를 배경으로 낮동안 토라졋던 것들의 낯이 선다
꽃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의 특성에 종속되지 않는다
보는 이
묻힌 장소
절정의 시간을 바탕으로 기억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스스로가 아니라 누군가의 대상이 된다
무한의 수동성은 적극적인 능동성이다
수비를 하려면 오히려 거세게 대들어야 하는 검투사를 닮았다
나는 이 녀석이 과연 꽃인지 바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만큼 이 녀석의 몸짓은 요염하다
혹시 독(毒)을 품었는가
그것은 밤(黑)에 보면 안다
공포란 원래 하얗게(白) 다가오는 법
포말빛처럼 찬란한 이 녀석은 마치 꿈에 나올법한 날선 핏방울(血) 같다
아직은 봄이다
여러 감정들은 아마도
서늘한 기운 때문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