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이야기는 왜 필요한가?
서사는 왜 중요한가?
드라마는 무엇을 전달하는가?
스토리텔링에서 느껴지는 것은?
내러티브의 매력은?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에게 노크해 보라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기라도 할까?
하지만
그 화분을 키우는 사람에게 노크해 보라
사랑하는 가족과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디저트로 나온 금귤을 씹다가 무심코 내뱉은 씨앗이
우연히 비어있는 화분에 파묻혀
하루이틀 한 달 두 달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빼꼼, 싹이 고개를 내민다
이야! 이 녀석 봐, 이제야 싹이 트는구먼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네!
누군가 집에 찾아와 그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무시무시한 가시를 품은 외줄기 앙상한 녀석에게
얘는 뭐예요?라고 물으면
아! 그 녀석은 뭐냐면요....
하면서 그간의 사연을 줄줄이 말해줄 수 있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이야기, 서사, 드라마, 내러티브가 아닌가!
비로소 우리 집은, 가족은, 나는, 이 화분은,
이야기가 생긴 것.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볼펜의 서사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가지고 있는 허름한 장갑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계속 방문하는 이 장소의 드라마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몰래 가지고 있는 그 사진의 스토리는 무엇입니까?
그녀는 나팔바지에 대한 이야기를 갖고 있지요
그것은 비단 나팔바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굴곡진 현대사
억압된 여성인권
민족의 분단
가부장제의 민낯
자유롭게 날고 싶은 욕망과
사랑하는 이를 사랑할 수 있는
그 모든 이야기를 연결한다.
나팔바지 하나가 그 시대와 그 공간의 세계를 만든다.
그러므로 시인은 언어를 만드는 사람이기 이전에
사람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지.
이야기 하나로,
우리는 다른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것.
여행을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야기가 있는 세상으로 떠나세요.
그 공간은 책 속에 있습니다.
판탈롱 나팔바지는
좁은 협곡을 따라 흐르던 강물이
하나로 합류할 때의 형태다
강이 강이라는 것을 잊고
강이 강이었던 것을 버리고
바다로 스며들 때의 그 순간
주저할 것도 없고
망설일 것도 없이
바다가 되는 그 순간
자신이 넓어지는 그 순간
튜바라는 악기가
나선형의 우여곡절을 거쳐
웅장한 저음을 쏟아내는 것처럼
억압과 구속을 바짓단으로 펼쳐 풀어버리고
마음껏 자유를 구가하는 바지
판탈롱 나팔바지가 만들어 내는
가장 강한 이미지는 바로
자유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