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박완서 / 1994

by Silverback


근 1년간 박완서 선생의 작품 속을 헤엄치면서, 나는 내가 어려서 접하지 못했던 문학이라는 세상과 얼마나 많이 친해졌는지, 그리고 그 바다가 얼마나 넓은 품으로 읽는 이를 받아주는지 소중하게 깨닫고 또 깨달을 수 있었다. '이야기'라는 것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서 다시금 겸손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역사'라는 것이 인간의 삶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옆집 할머니이자, 수줍은 수다쟁이 혹은 격동의 세월 속 한국의 어머니로 표상되는 박완서 선생은 1970년 등단부터 2011년 눈을 감을 때까지 수십 편의 글과 작품들을 남기셨는데, 우리가 흔히 알다시피 그분의 작품들 가운데를 관통하는 거대한 하나의 축은 '인간애'이다. 그분은 끊임없이 '사람(人)'을 이야기한다. 특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개성의 할아버지, 할머니, 숙부, 고모, 한국전쟁 시절의 엄마, 오빠, 친구들, 직장인들, 휴전 이후의 남편, 아들, 딸, 시어머니, 경제발전 이후의 손자들 조카들 친구들 등, 작가를 둘러싼 가족부터 시작해서 그와 연관되는 사람들이야말로 박완서라는 존재의 처음과 끝이다. 그분은 그만큼 사람을 사랑하였으며, 그렇게 사람들이 관계 맺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증언하고 고자질하고, 또한 칭찬하고 셈 내고 서로 어울리며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선생이 57세 되던 해, 즉 결혼한 지 35년, 작가로 데뷔한 지 18년이 되던 1988년도, 5남매 자녀들 중 유일한 아들인 막내를 잃는 참척(慘慽)을 겪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가족을 떠나보내는 경우가 생기고, 혹은 불가피하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만, 일제 식민시절인 6살 때 경험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6.25 전쟁 중인 20살 때 경험한 유일했던 형제인 친오빠의 죽음은, 가문의 장남만을 선택하여 말살하는 하늘의 저주와도 같은 비극이었을 것이고, 끝내 본인의 자식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자로 태어난 막내의 20대 꽃다운 생명마저 빼앗겼으니, 3대를 거쳐 드리워진 장남들의 죽음에 대하여 어찌 하늘의 무심함이라 일컫지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선생은 그 고통 속에서도 수녀원에 몸을 의탁한 채, 한 자 한 자 자신의 심경을 글과 일기로 남겼다. 그 글들이 정리되어 이후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제목을 갖고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고백이라고 언급하였지만, 실은 통곡과 자기 혹사를 통해서 이루어나가는 신앙적 성찰과 승화의 과정이라고 느껴진다.


이미 많은 작품이나 선생의 연보를 통하여, 그분의 가정사를 알고 있었지만, 왠지 이 책만은 읽기가 싫었다. 아니 읽을 수가 없었다. 친근한 이야기꾼의 마음을 찢어놓는 비극이라는 것은 아무리 한낱 일개 독자의 자격일지라도 덮어두고 싶고 묻어두고 싶었다. 이 고백을 읽는다면 나는 더 이상 선생의 글에 다가가지 못하리라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이 글로써 자신을 치유하고 극복하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그 엄혹한 굴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것처럼 다시 일어서서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독자로서 담담하게 그 과정에 공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행복했을 때에는 아침이 좋았는데, 요샌 정반대다. 내 앞에 펼쳐진 긴긴 하루를 살아낼 생각이 지겹도록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시때때로 탈진하도록 실컷 울면 그동안이라도 시간을 주름잡을 수가 있는데 그것도 용납 안 되는 하루 동안이란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가... 정신의 고통이 어느 한계치까지 차 올랐을 때, 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돼 있는 몸을 가진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내 몸과 마음에는 불행히도 그런 장치가 빠져있었다. 내가 자신을 독종이라고 저주하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독자로서 감히 필자의 당시 심경을 헤아릴 수 없겠으나 책을 읽는 내내 이 일기는 온전히 피와 눈물로만 써 내려간 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작품 활동을 하던 본인의 글에서 드러나는 어법과 형태가 완전히 분해되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살과 마음이 찢어져서 솟구치는 절규와 탄식이 극도로 절제되어 마치 그것이 연기로 만들어놓은 영혼의 형상처럼 방 안을 고요하게 떠다니고 있다. 그 무엇이든 붙잡으려는 심정이었을까. 마치 그 무형의 상대와 독백처럼 이야기하는 선생의 일기는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하였고, 마침내 아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에 있어서 나는 눈시울을 뜨겁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교 갔다 비 맞고 돌아왔을 때의 그 애 생각이 났다. 국민학교 때도 과보호가 될까 봐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가지고 학교까지 마중가지 않았다. 그 애도 으레 그러려니 기다리지 않고 비 맞는걸 오히려 즐긴 듯 흠빡 젖어서 씩씩하게 돌아오곤 했다. 비에 젖을수록 체온이 뜨거운 건강한 사내아이한테서는 흙과 식물과 동물을 합친 것 같은 강렬하고도 싱그러운 생명의 냄새가 풍겼었다. 그 애에게서 생명이 없어지다니, 들꽃으로도 풀로라도 다시 한번 피어나렴.


갑작스레 선생의 팬이 된 나에게 이 책은 읽어내기 힘든 일종이 관문이었다. 출생부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까지 본인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드러내고 그것을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공감하려 했던 수줍은 어머니의 역사 속에는 말할 수 없이 많은 것을 감내하고 이겨낸 슬픔이 가득 배어있었던 것이 아닌가. 김병익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거짓된 세상을 아프게 껴안고 떠나간 거인의 미소 속에서 우리가 이면의 슬픔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당분간은 박완서라는 사람의 그늘에서 조금 멀어지려 한다. 근 1년간 선생의 작품들 속에 파묻혀 지내던 나에게는 너무나 축복 같은 시간이었으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의 세계, 일찍이 누리지 못한 문학의 기쁨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훗날 내가 우리 딸이 성장하였을 때, 박완서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고 대화할 수만 있게 된다면, 문학은 나에게 축복을 베푼 것이라고 생각하리라.


이미 늦었지만, 나를 비롯한 - 선생의 말대로라면 즉 이야기를 바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문학의 즐거움을 일깨워준 한국 문학의 어머니여,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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