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자란 '나'라는 남자는
온전하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집안을 이끄는
가부장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하였다.
그것이 불행이었는지 다행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성장하는 동안 나에게는 '가부장' 혹은 '남자'에 대한 깊은 혐오감과
알 수 없는 처참한 연민이 뒤섞여 생기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 짧게 설명하기는 힘든데,
만약 나에게 자식이 생긴다면,
외동딸 아이 하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를 닮은 남자아이는 생각만 해도 부자연스러웠고,
나와 동일한 성을 가진 아들이라는 존재는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였고, 자기 꼬리잡기의 이율배반 같았다
효심이 지극했던 새 핏덩이는 결국 여성으로 태어나주었고,
녀석이 성장하던 십수 년간 나는 원 없이
사랑을 주고, 보듬어주고, 귀를 기울여주고, 말을 걸어주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헌신적인 가장이고 남편이자 아빠라고 생각하며
딸아이의 성장을 기뻐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내가 만들어 놓은 가정은
'나'라는 '아버지'를 기준으로 모든 것이 착실하게 재배되고 있는
전형적인 가부장 문화의 굴레를 뒤집어쓴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빠져나오고 싶었던 그곳은,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그곳이 되어버렸다
철학자 니체는 이런 나를 위해, 오래전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이 당신을 쳐다본다'
끝없이 원망하며 빠져나오고 싶었던 남자 부재의 가정사...
하지만, '나'라고 하는 남자가 아니라면
제대로 된 가정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의식 부재의 개인사...
이것은 세상이 순환하는 원리이기도 하고,
성과 젠더가 가정과 사회에서 서로 길항(拮抗)하며 발전하는
가정이라는 모듈의 방정식일지도 모른다.
남녀차별과 가부장 문화가 소멸되어가는 시대에
과연 나의 딸이라는 여자는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자손들은 성별 구분 없이 각자 자기 앞에 놓인
1인분의 인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남성 우월 주위와 페미니즘이 사라진 평화로운 시대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으며 살아가게 될까.
그 여자들의 일생은 이제 일기장에 기록해도 되는 것일까.
그 여자들의 일생은 훗날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