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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an 02. 2021

골프를 좋아하십니까?

  특정한 나이가 되고 나서, 특히 사회생활이나 경제생활을 하는 동안에, 그것도 유난히 인간관계나 비즈니스 관계에서 만난 사람들하고만 즐기는 운동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스포츠로 봐야 할까 업무로 봐야 할까.


  대중적인 스포츠 중에서 농구나 축구는 뭐 하나 가진 것이 없어도 공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운동이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유니폼이나 룰도 필요 없다. 한번 플레이해보면 알 수 있는 정도의 매우 심플하면서도 투박하고, 유연하면서도 강렬한 운동이다.


  탁구나 배드민턴, 테니스 쪽으로 가면 다소간의 장비 마련이 필요하다. 공 하나만으로는 부족하여 라켓과 의류, 신발 등이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그 스포츠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축구나 농구에 비하면 어느 정도 추가로 필요한 장비가 있기는 하지만, 열심히 땀을 흘리고 민첩한 순발력을 필요로 하고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점수를 역전하는 스릴이나 쾌감도 있는 것은 동일하다.


  여기에서 조금 더 장비나 부수적인 투자를 요구하는 스포츠들을 언급해보자면, 아마도 아이스하키나 야구 정도가 될 것 같은데, 뭐 이러한 여러 가지의 구기종목 이외에도 물 위에서 하는 여러 스포츠나 하늘을 나는 레포츠 그리고 기타 등등의 몸을 이용하는 취미생활도 끌어들일 수 있겠으나 이렇게 나열한 스포츠들의 여러 가지 다양하고 특이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공통적인 면을 꼽자면 해당 스포츠 자체의 고유한 멋과 특징을 누리고 즐기며 몰두한다는 점이다. 즉, 여러 가지 사전 준비나 부수적인 장비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그 스포츠 자체의 흥미를 위해서 즐긴다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골프라는 스포츠는 어떠한가. 


  초중고 학생들의 학교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관찰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도 아니다. 게다가 사회초년생들이라고 쉽게 접할 수 있겠는가. 자동차도 없고 집도 없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새내기들이 취미생활로 골프를 즐기는 것은 일반적이지는 않다. 결론적으로 골프라는 운동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골프는 돈만 있다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일까. 정답은 '일단은 그렇다' 이다. 일단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골프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골프 룰을 익히기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유튜브만 쳐다본다고 습득이 되지 않는다. 직접 필드에 나가서 체득하는 경험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뿐 아니라 초보의 경우 기본적으로 몇 개월간 레슨을 배워야 하고 연습장에서 생각보다는 비싼 돈을 주면서 연습을 해야 하고 전용 신발과 모자, 의류, 백 등의 부수적인 투자도 필요하다. 이렇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축구, 농구, 배드민턴, 탁구 같은 운동보다는 연습과정도 그렇고 준비도 그렇고 실제 플레이도 모두 세심한 과정들이 필요한 스포츠인 것이다.


  골프채는 클럽을 신규 세트로 마련하려면 평균 100만원 이상은 고려해야 하고(중고는 그 절반 이하도 가능), 1년간 실내와 실외 연습을 하면서 정식 레슨도 받으려면 대략 200만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필드에 나가려면 개인의 차가 있어야 하고(다른 사람 차에 타고 가도 되기는 하지만), 필드에 나가서 캐디피와 카트 및 그린피 등을 모두 치르려면 하루 1인 아무리 못해도 최소 10만원 이상은 필요하다. 그뿐인가, 내기도 해야 하고 라운딩이 끝나면 밥도 먹을 수도 있다. 어쩌다 술이라도 마시게 되면 대리기사도 불러야 한다. 그리고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공유일이나 주말 하루를 그대로 골프에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골프는 주말에 쳐야 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골프는 4명 정도가, 푸른 잔디로 아름답게 가꾸어진 드 넓은 필드에서 전기로 움직이는 아담한 사이즈의 카트를 타고 신선하고 똑똑한 역할을 하는 캐디의 보조를 받으면서 한 사람씩 지팡이 같은 쇠붙이를 휘둘러 탁구공만 한 사이즈의 공을 저 멀리 푸른 잔디의 지평선 너머로 쳐서 보내어 서로 약속한 작은 구멍 안에 집어넣는 근사하고 젠들하며 유유자적한 스포츠이다. 생각만 해도 멋지고 풍요하지 않은가. 각종 소음과 회색 콘크리트, 컴퓨터와 서류더미들을 멀리하고 온갖 새소리와 초목 산천이 펼쳐진 자연에서 몇몇 사람들과 하루 종일 여유롭게 작고 앙증맞게 생긴 공놀이를 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지친 삶에 힐링이 되고 건강에도 당연히 도움이 될 것이다. 비록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투자비용이 조금 더 들어가고 연습도 많이 필요하지만, 그 결과로 인한 혜택은 매우 이상적이고 평화롭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골프 본연의 멋과 맛을 즐기면서 치는 경우가 많은지 나는 궁금하다. 글쎄 한 10에 1~2명 정도나 될까... 아니면 프로골퍼들이나 그렇게 즐기고 있는 것인지, 근 20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본인 스스로 골프라는 스포츠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 누가 같이 참여해주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혼자서 스크린골프나 필드에 나가서 그 '휘두름의 맛'과 '경관이 아름다움', 그리고 그 운동 자체의 '운치'만을 위해서 즐기는 사람은 거의 못 본 것 같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대답은 본인도 잘 치지는 못하지만 다들 치고 있으니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다거나, 혹은 이게 좋아서 치는 사람이 어디 있냐 회사에서 안 잘리고 잘 보이려고 치는 것이라고 한다거나, 나중에 인맥을 쌓고 내 사업이라도 하려면 지금 배워둬야 한다는 말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막상 골프를 좋아하지 않아서 멀리하고 있으면,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골프 안치냐고 물어본다거나, 아직도 골프를 안치냐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언어가 일방으로 흐른다.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골프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일까? 왜 다들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즐기는 힐링 운동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 다들 사업이라느니, 인맥이라느니, 나중을 위해서라는 애매모호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여자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보통 남자들이 회사에 다닌다든지 어느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질량 보전의 법칙에 근거한 스트레스 보전 법칙(이 법칙의 상세 내용은 생략)에 따라서 업무 이외에 서로 어울리거나 공유하고 싶은 취미생활 같은 것이 반드시 필요한데,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회식이나 술자리 같은 유흥으로 그것을 해결한다. 조기축구회나 낚시, 동호회 활동 및 캠프, 데이트, 각종 만남 등이 모두 그러한 해소와 배설의 일종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혜택을 받는 양과 질이 높아지고 생활이 윤택해짐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희귀하고 고급스럽고 교양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한 취미생활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회생활', '인맥', '희소성', '은밀함', '고급스러움'이라는 5가지 요소를 만족시키는 취미생활의 정점에는 골프가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이 몸을 움직이는 취미생활이라는 것 때문에 스포츠의 하나로 인식이 되어 이제는 대중문화에 깊숙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나처럼 골프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유혹이 찾아왔다. 유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권유를 가장한 강요였는데, 직장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다. 왜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들에게 골프는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가?


  일단 개인적으로 고려해보건대, 골프는 땀을 흘려가면서 몸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점잖고 느긋하다는 의식이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회적 명성과 위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세나 몸의 형태를 흩트러트리지 않으면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는 특이점이 있다. 게다가, 골프라는 운동이 돈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건과 여유 있는 시간을 갖춘 사람들이 즐기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모양새를 갖추면서도 돈이 많이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신분이 있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의식과 그 수준을 동경하는 사람들로서 그 무리들에 끼고 싶어 하고 그 카테고리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또한 골프는 최대 4명이서 타인들과 떨어져서 고요한 공기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행위이다 보니 비공개적인 대화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편하게 나누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바로 그러한 점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지금은 많이 변화되었지만- 골프가 활성화되던 20세기에 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면서 발전하고 성장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고민이 생긴다. 과연 골프를 해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나처럼 주말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에게 하루 종일 시간을 반납하고, 그것도 십수만 원의 돈을 들여가면서, 덧붙여 어떠한 경우에는 나와는 생면부지인 사람들까지도 만나서 억지로 골프공을 쳐대야 하는 그러한 스포츠를 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것이 고민이냐고 하면, 회사에서는 암묵적으로 아직도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질책이 수시로 쏟아지고, 일이나 업무와 관련된 모든 대화의 종착역이 골프로 끝나는 상황이다. 일을 하는 사람들과도 일이 끝나면 골프에 대한 이야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고, 직원들끼리도 서로서로 골프 이야기뿐이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 직원들끼리 형성된 은근한 친목에 내가 빠져나온 모양새가 되고 협업이나 인간관계, 그리고 각종 효율적인 대화나 진급, 승진, 대우 등에 있어서도 -불이익까지는 아니더라도- 혜택을 받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숨통을 조여 온다.


  어쩌다가 나는 골프 하나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가. 주변 사람들 죄다 물어보면 마치 시험공부하듯 의무적으로 골프채를 휘둘러대고 있고, 마치 이것이 본인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처럼 그 숙명적 구실을 만들어서 몰두하는 모습들이 정말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시간이 나면 근처 주막에서 술 한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관계, 혹은 훌륭한 책이나 영화를 보고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 아니면 필요한 때 작은 선물 같은 것을 나누면서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불필요한 말은 거르고 필요하고 좋은 말을 주고받는 그러한 관계. 억지로 형성시키지 않고, 받기 싫은 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누리며, 부과하면 안 되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의무를 지키는 그러한 관계. 그러한 관계를 지키면서 일하고 사는 것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골프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라는 말인가.


  부디, 이렇게 억지로 처절하게 시작하는 골프가 훗날 반드시 나에게 흥미로운 기분을 불어넣어 주어서 누가 뜯어말려도 순수하게 골프를 즐기는 사람으로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부디.


2021년 새해 정초부터 어딘가에 끌려가는 개의 심정으로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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