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속사정-2
이런저런 거절을 당하며,
‘입양은 사랑입니다’라는 문턱에 걸려 자꾸 넘어지던 나는
할 수 없이 한국에서 반려견을 중개하는
웹사이트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예쁘고 천사 같은 친구들의 사진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곧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용이 최소 수백만 원에 이를 뿐만 아니라,
피해 사례도 많았다.
아픈 강아지를 받았다는 이야기,
계약했던 강아지 대신 다른 강아지를 받았다는
고발성 후기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이 과정들을 거치며, 생각이 자꾸 많아졌다.
‘어떤 개를 키우고 싶은가?
'개가 아닌 고양이를 키워 보고 싶은 건 아닌가?’
'아니, 정말 반려동물을 키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개를 데려오게 된다면 이번이 두 번째 경험이었다.
첫번째 개를 키우면서 어떤 점이 힘들었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털, 그리고 냄새였다.
하지만 그 녀석과 비교적 오래 잘 지낼 수 있었던
이유들도 함께 떠올랐다.
배변을 잘 가렸고.
분리불안이 없었다(그렇게 믿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짖음이 심하지 않고 조용했다.
돌이켜 보면 이 세 가지 장점들은
모두 내가 첫 반려견을
아주 어릴 때 데려와 우유를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면서
차근차근 훈련하고 서로에 적응한 결과였다.
그런데 만약, 입양견을 잘 못 데려오면
이 모든 것들이 어긋나서
서로 엄청 고생할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혹은 한국에서 강아지를 구입해 데려온다면,
첫 반려견에게 1-2년을 꼬박 쏟아부었던
그 엄청난 노력들을 다시 해야 할 텐데,
내가 그 과정을 또다시 잘 해낼 수 있을까?
'난 잘할 수 있어!'
바로 단정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집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적극, 보류로 번복되었고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살 정도 된 프렌치 불독을
한국으로 데려가지 못하게 될 사정이 생겨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는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게시물 말미에 아무래도
입양을 보내야 할 거 같다면서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고,
나는 다음날 메시지를 보내 보았다.
미씨에서 글 보고 연락드려요. 입양에 관심 있어서요.
"안녕하세요? 관심 갖고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양처는 아직 결정 안되셨어요?
"아직이요.ㅠㅠ"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며
내가 키울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견주의 대답은
우선순위로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어려서 활동량이 많은 시기라
함께 놀아줄 아이들이 있는 집이나
다른 강아지가 있는 집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애가 분리불안은 없지만,
퇴근시간까지 낯선 환경에서
혼자 잘 지낼 수 있을 지도 걱정이 돼요.”
예전 같으면 저 정도 멘트에
벌써 상처를 받아서 시무룩해졌을 텐데,
이젠 거절도 몇 번 경험을 해보니 아무렇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이 다소 자유롭긴 하지만
항상 개와 함께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만약 다른 곳을 못 구하면 연락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저에게 온다면, 좋은 환경에서
사이좋게 잘 지낼 거니까 안심해도 될 거예요.”
그 말은, 나로서는 견주에게 전할 수 있는
최선의 진심이었다.
부디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