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drink Nov 30. 2021

그들의 인생을 그리다

소망이 없다는 것은 그냥 그렇게 사는 것

 결혼이란 뭘까. 

저기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본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에게 나의 인생을 맡기는게 결혼이라니. 오늘따라 얼굴은 더 푹 꺼지고, 코는 더 커 보인다. 저 남자. 형부의 팔짱을 끼고 Virgin Road 를 걸어간 끝에서  얼굴을 들어 살짝 보니, 미소로 씰룩거리는고 서 있는 모습도 낯설다.  애경은 궁금하다. 


‘저 남자는 내가 좋긴 한걸까? 이런 마음으로 결혼 하는것이 맞는건가?’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 막내딸, 경애가 시집갈때 까지는 살거야. 걱정마’  


     엄마는 약속도 지키지 못할 거면서 습관처럼 이야기 했다. 심장병으로 숨을 헐떡거리면서 자주 말했다. 경애가 어릴적부터 엄마는 아팠고, 6학년 되던 해에 경애의 손을 놓았다. 학교에 다녀오면 시체같이 누워있던 엄마의 모습이 짜증스럽기도 했다. 건강한 다른 엄마처럼 왜 안아주지도 웃어주지도 못하는 40중반의 엄마가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경애는 ‘나의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알았다. 엄마가 누워 있던 이부자리도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매일 몸져 누워 있는 엄마라도 없는 집은 경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의 시체라도 끌어안고 살고 싶어졌다. 매일 매일 닦고, 안아주고 엄마의 옆에서 밤마다 잘수 있을 것 같았다. 장지에서 일꾼들이 땅을 파고 엄마가 들어 있는 관을 내리면서 흙을 떠서 덮기 시작할때, 경애는 미친듯이 울며 몸을 미끄러뜨려 내려갔다.  같이 죽고 싶었다. 어른들은 곡하며 울다가도 힘이 참 세었다.  경애를 끌어내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큰언니 수애는 구석으로 경애를 끌고가 무서운 눈을 하고, ‘ 정신차려’ 라고 했다.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정신을 차릴수 있단 말인가. 

    차분하게 손님을 맞는 아버지와 큰언니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 않아서 미워 견딜수가 없었다.  . 마치 엄마가 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일을 처리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이나 지인들을 보고서 미소를 짓는 괴물들과는 장례식이 끝나면  기필코 연을 끊고 살아야지 마음 먹었다.  그러나 악다구니 쓸 필요 없이, 아버지의 재혼으로  자연스레 그렇게 되기 시작했다.

   

   ‘새 엄마’ 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존재였다. 살다보면 괜챦아지고 익숙해질거야 라면서 새엄마를 들이미는 아버지는, 내가 알던 아버지가 이미 아니었다. 술로 밤을 새우는 탓인지 인상이 점점 변해갔고 해가 다르게 늙어갔다. 몸은 수척해지고, 강단있고 어투와 총명하던 눈빛이 사라져 갔다.  엄마가 살아 있을적보다, 옷은 더 남루해지고 머리가 덥수룩 해져도신경 쓰지 않았다. 수염은 말할것도 없었다. 어느날, 경애는 외출하는 아버지의 셔츠에 단추가 없는 것을 보고는 눈물이 주르륵 났다.멋쟁이인 남편의 셔츠의 단추가 떨어진 것 하나 보지 못해, 쉬기 힘든 숨을 쉬어가면서 꼼꼼하게 단추를 달던 엄마였다. 단추와 반짇고리도 , 물동이도,  안방의 문고리도 경애에게는 엄마였다.  경애는 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하면서 미웠다. 막내딸이라 어릴적부터 무릎에 앉혀 놓고 이뻐해 주시고 글을 가르쳐 주셨던 아버지이기도 하고, 엄마를 먼저 보내고 가정을 잘 돌보지 않는 야속한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참 후에 알았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아버지는 온 몸으로 죽은 아내를 그리워 했다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자신도 적응해 보려 몸부림 쳤다는 것을, 딸 경애가 가슴아리게 깨닫기 까지는 아버지가 엄마 돌아가신 3년 후에 뒤따라 나서고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가의 이전글 그들의 인생을 그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