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트 철학사상에서 바라본 이카루스의 추락의 재해석 -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 존재로서 언제라도 욕구와 애착심에 따른 행위를 할 수 있다. 즉 인간은 동물적 본능이나 이성에 의해서도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본능과 욕구를 절제하고 이성적 판단에 따르기도 한다. 이러한 선택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간이 자유의지가 관여하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은 책임의 전가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측면에서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선택하고 행위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편 필자는 칸트의 입장에서 이카루스의 추락의 재해석하여 인간 존재로서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카루스는 아버지와 함께 감옥에 갇히게 되어, 감옥에서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지만,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여 밀랍이 녹아 바다로 추락해 죽고 말았다. 우리는 이카루스의 추락이 욕망에 대한 파멸의 대가인지 끝없는 자유와 도전의 의지에 대한 희생인지를 구별하기 이전에, 이카루스가 탈옥하려고 시도하는 행위가 칸트가 말하는 도덕법칙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카루스는 ‘자유를 찾기 위해 생명을 걸고 감옥을 탈출해도 좋다’라는 개인적인 준칙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준칙에 따라 행위 한다면,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할 수 있는 보편적인 원리가 아닌 개인적인 준칙에 불과할 것이다. 즉 이러한 준칙은 절대로 보편타당성을 지닐 수 없다. 준칙이 이성의 역할에 따라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닌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만약 (네가) 이러저러한 일을 성취하려면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라”는 것과 같은 일정한 목적 아래서만 타당한 ‘가언명령’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정언명령’의 형태로만 존재해야 한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의 법칙과 당위의 법칙을 좇아 행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당위의 법칙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성’의 기본적인 역할은 어떤 도덕적 행위에 대한 보편성과 필연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따라서 칸트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인 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는 언제나 도덕법칙에 일치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카루스의 탈옥 시도 행위는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라고 할지라도 칸트가 말하는 도덕법칙에는 위배된다. 이것은 정언명령에 따르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언명령은 도덕률이라고도 불리며, 다음과 같이 표현되기도 한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주관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 수립이라는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위하라.” 칸트에 의하면 도덕법칙은 보편타당성을 지닌 것이어야 하며, 경험적인 내용을 초월하고 있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또한 칸트는 “너의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위하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언명령의 법칙은 무조건적으로 타당하며, 법을 따라야 할 필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언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결국 인간존재를 공허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카루스와 같은 의지의 주관적 규정 근거인 개인적인 ‘준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도덕성의 타락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칸트가 제시한 정언명령을 준수하며 살아가야 하며,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타당한 행위를 해야 한다. 즉 우리는 우리 의지의 형식적 준칙에 따라야만 한다는 도덕법칙을 따르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근거로 도덕법칙을 따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모여 살아간다면, 가장 이상적이고 윤리적인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상적이고 윤리적인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만이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의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주장하는 인간존재로서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