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적 지식'의 '합리성' -
오우크쇼트는 “정치에서의 합리주의”에서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보여주며 정치와 교육은 연관 짓는다. 또한 근대 합리주의의 특징과 오늘날 서양의 정치현실에 미친 영향에 대해 중점적으로 고찰한다. 오우크쇼트는 이를 위해 인간의 지식에 관한 특정한 이론에 주목한다. 이 이론은 ‘기법적 지식’과 ‘실제적 지식’의 대비를 통해 설명된다. 기법적 지식과 실제적 지식의 차이는 각각이 표현되는 방식과 획득되어지는 방식에 있다. 기법적 지식은 규칙의 형태로 명문화되는 것이 가능하고 기계적으로 학습될 수 있는 지식이다. 이와 달리, 실제적 지식은 엄밀한 명문화가 불가능한 지식으로서 실제를 통하여 표현되는 지식이기 때문에 교수하거나 학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편 합리주의자들은 실제적 지식을 부정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식은 오직 기법적 지식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기법적 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기법적 지식의 확실성과 객관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오우크쇼트의 주장처럼 기법적 지식이 확실성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지식이라는 합리주의자들의 주장은 그릇된 기준에 근거한다고 본다. 즉 기법적 지식은 온전한 지식이 될 수 없으며 지식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합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기법적 지식의 확실성과 객관성은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한편 합리주의자들의 오류는 기법적 지식에만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오우크쇼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합리주의의 오류가 진정한 지식의 획득과 교육의 의미를 오염시키고 왜곡시키는데 있다.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방법론에 의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식의 획득은 백지의 상태에 확실하고 완전한 지식을 채워 넣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이때 지식의 획득은 기법적 지식에만 의존한다. 그러나 지식의 획득 과정이 전적으로 기법적 지식에 의존한다는 것은 교육에 대한 그릇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합리주의자들이 기법적 지식의 훈련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교육이라고 믿는 것은 진정한 지식과 교육의 의미를 왜곡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법적 지식을 획득하는 것은 순전한 무지의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을 보다 나은 것으로 가다듬는 것이다. 어떤 지식을 획득하든지 텅 빈 백지와 같은 상태에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합리주의자들의 지식과 교육에 대한 이해는 이치에 합당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합리주의 교육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지식과 교육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오우크쇼트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식은 기법적 지식이 아니라 실제적 지식이며, 기법적 지식은 실제적 지식을 기반으로 삼지 않고서는 지식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합리주의자들이 기법적 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으며, 기법적 지식의 훈련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적 지식의 전수와 획득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기법적 지식은 실제적 지식이 일반적 원리나 규칙의 형태로 명문화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 지식이 전수되고 획득되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비합리적인 것이며, 실제적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기법적 지식이 지식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실제적 지식과 결합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교육은 지식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학습하는 훈련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경험의 축적을 통해 탐구하고 올바른 증거에 입각하여 볼 줄 아는 힘을 길러내는 실제적 지식에 대한 전수와 획득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 지식의 획득과 전수를 통한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진정한 지식인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지식인은 ‘얼치기 지식’을 획득한 ‘겉똑똑이’와 달리 기법적 지식의 원천이 되는 실제적 지식을 획득한 사람으로서,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바탕으로 합리적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이 필자가 주장하는 ‘실제적 지식’의 ‘합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