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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ju Nov 15. 2015

대학이라는 돛단배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지적 교류와 학문적 대화의 장



  우리나라의 입시위주의 교육은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매년 거론되는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교육도 초·중등교육기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에서 대학을 평가할 때 취업률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학을 대학의 세계로 보지 않고 능률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세계, 결과와 성취만을 위한 수단의 활동의 세계라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대학은 대학이 속해있는 우리 사회 속에서 대학 아닌 것이 아니라 대학이기 때문에 주어진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은 전통적인 대학의 존재 이유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의 존재 이유를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학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 존재를 잃고 있는 과정에 놓여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학이 처한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대학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에 대답을 추구하면 얻을 수 있다. 대학은 배움은 단편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곳이 아니라, 학자들의 공동체 이며 학문을 추구하면서 그 전통이 보존되고 확장되는 곳이다. 오우크쇼트에 따르면 학문은 단일한 자기장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학문의 세계를 하나로 묶는 데는 외적인 접착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필자 또한 학문은 다른 세계와 우주라고 보기 때문에, 대학이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답은 대학의 본질과 이념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대학의 전통적인 본질과 이념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오우크쇼트가 분류한 대학에 존재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는 오우크쇼트가 분류한 세 부류의 사람들을 학자와 학자이면서 교사인 사람을 하나의 부류로 보고 학부 학생을 다른 부류로 보아 이들이 취해야할 노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오우크쇼트가 말한 학생들의 배움의 추구에 필요한 ‘어떻게’의 지식을 전수하는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문의 추구를 위해서는 배움과 연습을 계속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데 기본 바탕이 되는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학자나 교사는 단편적인 지식들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 생명력 있는 ‘어떻게’의 지식을 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식의 힘과 함께 학문을 추구하는 것이 학생들과의 학문적 대화를 통해 학문에 대한 영감을 가져오게 한다.

  한편 학부 학생은 취업을 위한 대학교육을 타파하려고 하기보다는 대학생이 되었다면, 자신부터 수동적인 모습을 버리고 현대 교양인이 되기 위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필자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 다른 누군가를 앞서기 위해 입시에 필요한 공부만을 하면서 살아왔다. 이는 우리나라 학생 대다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어진 지식에 대한 암기만 하는 수동적인 태도로는 대학에서의 학문을 추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을 통해 지적인 측면에서의 지식밖에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 학생은 자기 자신의 지성의 성장을 위하여 대학교육을 통해 전공과목뿐만 아니라 폭넓은 교양적 측면의 지식을 쌓아 다방면에 지식을 갖춘 인재로서의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특히 학문적 대화를 통해 대학이 처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학문에 대한 영감을 가져오게 한다.

오우크쇼트는 대학교육은 학문의 추구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이 대화의 양식에 관심이 없다면 대학은 그 존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필자는 윌리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말을 통해서도 대학의 이념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깨달았다. 그는 교육은 양동이에 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것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예이츠의 말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는 것만으로는 불을 지필 수가 없으며, 이는 대학의 이념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또한 대학의 이념이라는 불이 타오르기 위해서는 활발한 학문적 대화라는 생명력이 불어넣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능률과 효율만을 추구하고, 누군가를 앞서려고만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의 장인 대학에서의 학문적 대화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해 가야 한다. 학문적 대화는 학자와 교수들 상호간, 교수와 학생 간, 그리고 학생들 상호 간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대학이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대학의 이념을 보존할 수 있으며, 대학이 지적 교류와 대화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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