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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Sep 20. 2023

평범한 나여도 괜찮아!

우리 학교는 마지막주 수요일마다 전체 교사가 수업 관련 연수를 듣는다.

이것은 강원도 진로교육원장 출신 교장선생님과 연수 담당 장학사 출신 교감 선생님이 만나 진로연계 시범학교가 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거기에 반발하거나 거부하는 선생님이 한 분도 없이 이런 연수가 이루어지는 것에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지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직 내 어떤 강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그런 건 없다. 다만 열정적인 관리자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긍정적인 선생님들이 만나 환상의 콜라보를 만들어 냈을 뿐이다.


가끔 늦은 퇴근에 불만이 생길 만도 한데 그 불만을 잠재울 만큼 연수 강사 라인업이 화려하다. 연수 담당 장학사 출신답게 우리 교감선생님께서 인맥 네트워크를 동원해 전국에 내로라하는 유명 강사를 섭외해 오셨다. 강사 리스트를 보니 선생님들의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많이 배울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그 화려한 이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이름이 끼어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야 나.


우리.. 어디서 봤죠?


나와 교감 선생님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아이 출산 후 다시 학교에 복직했을 때, 그때는 신규교사 딱지를 떼고 이제 제대로 한번 시작해 보겠다고 열정과 의지가 불타올랐을 때였다.  물론 수업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있지만 그때만큼 체력이나 의지가 받쳐주지 않는다는 슬픈 이야기가....

아무튼 그때, 전국 국어교사 모임에 강사 섭외가 들어왔는데 원래 하기로 하였던 선생님이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못하게 되면서 대타 강사가 필요했고, 그때 한 선생님께서 나를 추천하셨다.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 계세요~"

그래서 그때 국어교사 여름방학 연수에 강사로 서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그때 담당 장학사가 지금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이셨다. 교감 선생님은 그때 내 모습을 기억하고 계셨다.

"처음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아주 씩씩하게 잘하더라고~"

그때 반응이 괜찮았는지, 강의 기회가 또 생기기도 했으나... 얼마 안 둘째를 갖게 되었고 출산과 동시에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연수 강사로서 나의 경력은 단절되어 버렸고, 둘째 낳고 복직 후에는 체력적 한계와 시간에 쫓겨 겨우 할 일을 해내며 아등바등 버티는 애둘 워킹맘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교감 선생님께서는 "강의 한 번 해볼래요?'라면서 내게 기회를 주셨고 그리하여 유명강사들 틈에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의문을 갖게 할 내 이름이 나란히 자리하게 된 것이다. 


오늘 강의의 주제는 '진로 연계 독서 교육'이다.

4교시까지는 수업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오후에 할 강의 때문에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밥을 먹다가 입술을 깨무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평소 대범하고 무던한 성격이라 주위 사람들은 내가 남앞에서도 긴장을 하지 않을거라도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티가 안날 뿐이지..사실은 엄청 긴장하는 성격이다.

점심시간부터 5교시까지 수업이 없어서 준비한 자료들을 넘겨가며 계속 보고 연습을 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라면 얼굴에 철판도 깔고, 뭔가 있어보이는 척도 하겠지만..이거 너무 훤히 아는 사람들 앞에서 하려니 여간 쑥쓰러운 것이 아니다. 마치 도박판에서 밑천 다 들어내고 한 판 붙는 기분이랄까?


내가 다른 교사들보다 실력이 뛰어나거나, 경력이나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내가 하는 수업은 정말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업이라 내세울만하지 않는데..그렇게 생각할 수록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다가 그동안 내가 했던 독서 수업과 활용하기 좋은 수업 아이디어들을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몇 년치의 자료들을 전부 끄집에 냈다. '뭘 좋아할 지 몰라 다 준비했어' 하는 마음으로, 양으로 승부 보는 뷔페처럼 한상 차려서 강의실로 들어갔다.


원래도 말이 빠른 편인데 긴장을 했는지 말이 더 빨라지는 것 같았고, 안해도 될 말을 하고, 해야 할 말은 생략하는 과감한 말하기가 이어졌다. 교실에서 수업을 할 땐 아이들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농담 섞어가며 뻔뻔하게 말도 잘하는데 선생님 앞에서는 그게 잘 안된다. 아마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게 아닐까 했다.  

강의는 무사히 마쳤다.

다행히 선생님들께서는 준비를 정말 많이 한 것 같다고 격려도 해주셨고, 활용할 만한 내용이 많아 유용했다고도 말씀해주셨다.  

" 다른 연수 들을땐 그냥 감탄만 하고 따라할 엄두도 못내겠던데..오늘은 들으면 아, 나도 해볼만 한데? 한번 해볼까? 그런 생각이 든다니까."

그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이게 내가 가진 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변이 뛰어나지도, 수준 높고 전문적인 수업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나 들으면 이해하기 쉽고, 나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오히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함이 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유명 연예인이나 헐리웃 스타를 보며 '나도 해볼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랑 비슷하거나 민만한 이웃집 언니나 내 사촌동생이 하는 걸 보면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다. 지금껏 내세울 것 하나 없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모습이 아쉬울때가 많았는데 평범하니까 사람들과 잘 섞이고, 쉽게 말하니까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나도 해볼까?' 라고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생각해보면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없는 것, 부족한 것을 생각하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좋은 옷을 입으려고 하거나 나를 꾸미려고 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을 이용하고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것이 특별한 재능 없이도 즐기면서 일하는 나의 비결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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