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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Oct 02. 2023

내가 국어교사가 된 이유

고등학교 생기부

처음부터 교사가 꿈은 아니었다.

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문예창작과에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비싼 사립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할 재간이 없었다. 결국 부모님의 설득과 타협 끝에 지방 국립대학교의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국문학과에 지원하고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방송작가를 시켜준다는 선배의 말에 부모님 몰래 휴학하고 짐을 싸서 서울에 올라갔다. 그러나 글을 쓰러 온 나에게 회사는 피라미드의 구조를 열심히 설명하며 물건을 들이밀었다. 도망치듯이 쫓겨 나온 후에 한동안은 사람에 대한 배신과 분노로 힘들어하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함을 속에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와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원 강사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늘 내게 반갑게 인사하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거리는 중학생들이 귀엽고 고마웠다. 누군가에게 환대받는 기분도 오랜만이었다.

처음엔 경험이 없어 주 3회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했는데 아이들 성적이 오르고, 원장님의 신임을 받기 시작하면서 일이 늘어났다.  경력을 쌓아 더 큰 학원으로 옮고 나중엔 입시학원에서 수능 국어 강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입시 학원이었기 때문에 문제풀이를 주로 했는데 문학 지문에서 좋아하는 작품을 만날 때마다 신이 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 그러나 진도를 나가야 했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학원강사에게 그런 시간들은 사치였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을 말하기보다

이 작품에서 어떤 내용이 시험에 출제되었는지가 더 중요했다.

아쉬운 마음에 함께 읽으면 좋은 소설 작품들을 추천해 주면 아이들은 생기 잃은 눈빛으로 말했다.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요... 잘 시간도 없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소설의 뒷이야기나 줄거리 궁금하다면서 들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로 흥미를 유발하면서 문제 풀이를 계속 이어나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즐겁고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욕심이 생겼다.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가 원하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뒤늦게  ‘교사’를 꿈꾸게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교사를 준비하고자 했을 때 주위에서는 ‘너무 늦었다’며 만류했다. 그러나 모아둔 돈으로 학비를 대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낮에는 공부하고 생계를 위해 밤에는 일을 하면서 임용고사를 준비했다.      

 다시 시험공부를 하다 보니 수능을 앞둔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꿈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서로 응원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면서 잠시 쉴 때는 좋아하는 시나 짧은 소설 한 편을 읽으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고,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연달아 시험에 떨어지면서 많이 좌절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학창 시절 작가를 꿈꾸었을 때도,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에 임용고사를 보겠다고 했을 때도, 세상은 나에게 늘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런 게 신기하게도 책은  언제나 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포기하기가 어려웠는지 모른다. 책은 자꾸 나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게 만들었다.  덕분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교단에 설 수 있었다.

 

교사가 된 지 어느덧 10년 차가 되었다.

돌아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마주하기도 했지만 교사가 된 걸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

살면서 힘든 순간, 선택의 순간에 놓일 때마다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 꿈꾸고 싶은 삶을 그려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곁내 선택을 돕고 지지해 주는 책이 있었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불안하다. 그럴 땐 책을 통해 앞서 그 길을 가보고 먼저 고민한 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삶의 지혜를 구해보자. 고민의 순간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에 현혹되어 흔들릴 때 나를 잡아 줄 한 권의 책을 만난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이 어디 있을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그러한 행운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좀 더 책과 가까워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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