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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Oct 10. 2023

마음을 치유하는 '시 처방전'

1탄.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긴 연휴를 보내고 나니 아이들이 좀처럼 다시 공부할 마음을 못 잡는 듯하다. 게다가 이번주 금요일 체육대회가 있어 마음이 들떠있다. 이 시간 동안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시집을 이용해 수업을 하기로 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시집을 읽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아이들에게 시란 범접하기 어려운 고상한 것, 어려운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몇 번의 시 수업 후에 아이들이 시를 좀 더 친근하게 여기기는 것을 확인했고, 무엇보다 시를 읽고 수업할 땐 아이들이 순해지는 느낌을 받곤 해서(비록 그때뿐일지라도;;) 한 번씩 시집으로 수업을 한다.


이번 수업은 친구의 고민을 읽고 시로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시 처방전' 수업이다.

한번쯤 시를 읽고 위로를 받거나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더니 한 반에 보통 다섯 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소개했다. '교사'라는 꿈을 위해 도전 중이던 시절, 임용고사에서 몇 번이나 낙방하고 생활고까지 겹쳐 꿈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를 읽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던 경험을 나누면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시의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도 시를 통해 친구의 마음을 위로해 줄 것이라며 수업방법을 소개했다.

 

먼저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고민을 적게 했다. 장난으로 고민을 적어 내면 그걸 뽑아 처방글을 쓰게 되는 친구도 장난으로 임하게 되어 이 수업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을 썼는데 성의 없게 답한 글을 보면 실망하거나 속상할 수도 있다. 그러니 모두가 진솔하고 진지하게 임할 수 있도록 시작 전에 단단히 주의를 줬다.


아이들의 고민은 익명(닉네임)으로 적어 내도록 한다. 그리고 고민 종이를 무작위로 섞은 뒤 다음시간에 나눠준다. 자신이 받은 고민 종이에 적힌 고민을 읽고 그 친구에게 처방글과 함께 들려주고 싶은 시 한 편을 적어주면 된다.


오늘은 고민 종이를 나눠줬는데 받자마자 거침없이 고민을 써 내려가는 아이들도 있고, 어떤 걸 적어야 하나 곰곰이 고민하는 아이들도 있다. 먼저 쓴 친구들이 고민 종이를 제출했다. 아이들의 고민을 하나 둘 읽어본다.  


키가 작아서 고민, 좋아하는 그 애 때문에 고민, 성적이나 진로로 인한 고민.. 중학생 다운 고민을 읽다 보면 귀여워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좀처럼 웃기 어려운 고민도 있다.


엄마가 큰 수술을 받고 경과가 좋지 못한 아이는 엄마가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혼자 남게 되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부모님이 잦은 부부싸움으로 집에 들어가는 것이 괴로운 아이도 있고,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고민들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편으론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도 학창 시절에 고민이 가벼운 아이는 아니었다.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다. 게다가 그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다는 죄책감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아이들의 고민을 읽으며 그 아이들이 느낄 죄책감과 무력감이 생각나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고, 얼마나 위로가 필요했으면 여기에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힘들게 꺼내 썼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더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마침 앞쪽에 앉은 학생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 우는 거예요??"

순간 당황해하며 "응? 아닌데?"라고 말하며 수습에 나셨으나 여기저기에서

"선생님, 얼굴이 빨개요."

"선생님 진짜 울어요?? 왜요??" 라며 일제히 시선에 내게 쏠렸다.


"아니.. 너희들 고민을 읽다 보니, 아직도 이렇게 철없고 아이 같은데 속으론 이런 무거운 고민들을 품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또 선생님 학창 시절 생각이 나서 마음이 짠해져서 그래."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내 말에 적당한 대꾸를 찾지 못했는지 아무 말이 없었고 순식간에 교실 안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 어쩌지? 이거야 말로 갑분싸네'

 그 순간 한 아이가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외쳤다.

"선생님! F 죠??"

그 아이의 한마디에 어느덧 정적은 사라지고 다 같이 웃어버렸다.


다음시간에는 친구들의 고민을 읽고 '시 처방전'을 내리기로 했다. 아이들이 친구들의 고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어떤 처방을 내릴지 기대된다.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배우는 것이 있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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