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엄마 Oct 27. 2022

국어 선생님이 중학교 때 사랑한 소설들

10년 전에 신규교사로 발령받았을 때 선배 교사 선생님께서 복도를 지나다가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보셨는지 쉬는 시간에 내게 와서 물었다.

" 수업 시간에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아~ 오늘요?  애들이 재밌는 이야기 해달래서 소설 이야기해 줬어요."
"어머 그래?? 무슨 소설이야?? 뭐 재밌는 소설 있어?."
"아... 그게.. 김동인의 <감자> 요.."
"감.. 자.?? 요즘 애들이 그걸 재밌어해..??"

선배 선생님은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나를 만나면 그 이야기를 하신다. 그때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젊은 신규교사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재밌는 소설 이야기가 100년 전 일제강점기에 나온 소설이라니... 그것도 돈 때문에 매춘을 하는 이야기라니.....

김동인의 <감자>의 주인공 복녀는 가난하긴 해도 정직한 농가에서 바르게 자랐지만 게으른 남편을 만나고 가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몸을 팔아 쉽게 돈을 버는 길을 알아버린다. 이때 복녀의 도덕성 타락은 환경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며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키는 것은 환경적 요인이 크다는 자연주의적 색채가 짙게 깔린 소설이다.

닌 중학교 때 이 소설을 읽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환경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믿었는데..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의 본성이라니... 그럼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하냐에 따라 나의 본성을 달라지는 것인가?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문학을 통해 만난 세상은 너무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을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세상 속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옥희 어머니라면 사랑방 손님과 사랑을 이루려고 했을까?? '
'내가 김첨지라면 나가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그 어떤 선택도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처지와 입장이 이해되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더 넓고 큰 세상, 그리고 그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그 모든 삶이 저마다 의미가 있다는 것이 가끔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의 사춘기는 그렇게 문학을 통해 위로받고 더 큰 세상을 상상하며 그렇게 지나갔다.

그날 아이들에게 김동인의 <감자> 이야기를 들려주고 난 뒤 복녀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아이들은 복녀를 창녀라고 욕하기도 했고, 복녀를 불쌍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인물에 대한 비판과 공감의 대화가 한창 이루어진 뒤...
어떤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본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에는 뭐가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김동인의 <감자>를 직접 찾아보고 읽어본 아이도 있었다. 한 아이는 읽어보니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신 것만큼 재미있지 않다고 했다. ㅎㅎㅎ 아무래도 생소한 어휘도 많고 문체도 낯설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문학을 읽어갈 시간은 앞으로도 많고, 그렇게라도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니까.

최근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풍자, 역설, 반어의 표현 방법을 배우며 교과서에 실린 김첨지의 <운수 좋은 날>과 박지원의 <양반전>을 읽었다.
중학교 때 <운수 좋은 날> 읽고 울었다고 얘기하니 아이들은  에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웃는다.

이렇게 끝내기엔 아쉬워 반어적 제목을 가진 전영택의 <화수분>과 기회주의자 이인국 박사를 풍자하는 <꺼삐딴 리>도 읽어보고 하려고 전문을 복사했다.
풍자소설 찾느라 오랜만에 채만식 소설도 다시 읽는데 이런 소설 나도 너무 오랜만이라 재미있었다.
 
문학이란 게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사람 사는 모습은 100년 전이든 지금이든 크기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는 것을 문학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 아이들이 읽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궁금하다 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치유하는 '시 처방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