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엄마 Oct 31. 2023

혐오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다.

김애란 <가리는 손>을 읽고

전국국어교사 모임 가을호 회지가 나왔다. 이번 가을호의 주제는 '혐오'였다. 예전에는 '혐오'라는 단어 자체도 잘 쓰이지 않았다. 그냥 '싫어한다' 정도의 정도의 감정과 표현을 사용했다면 요즘은 '혐오'라는 말과 그 말에 해당하는 새로운 어떤 감정이 생긴 듯하다. 내가 처음으로 그런 단어를 맞닥뜨리게 언제인지를 생각해 봤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 작품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나는 83년생으로 소설 속 김지영은 내 얘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감하며 읽었다. 책을 읽으며 남녀선호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있던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차별받았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교직사회에서는 차별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결혼을 하고 임신 출산을 하면서 또다시 마주하게 된 차별적 언어와 행동 들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그러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문학작품을 읽고 공감한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책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은 최근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는데 내 이야기 같아 너무 공감이 되었었어."

그 순간 한 남학생이 나를 향해 "선생님, 페미예요??"라고 물었다.

그때 그 학생은 마치 불쾌한 것을 마주한 것 같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잔뜩 날이 선 말투였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수업시간에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갔던 것 같다. 아마 그 순간 내가 그 학생에게 받은 감정이 '혐오'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에도 <82년생 김지영>은 남성들에게 여성 혐오의 감정을 부추기는 용도로 자주 언급되었고, 그러한 현상이 이해가 되지 않아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부터 학교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쓰는 학생들을 가끔 보게 되었고, 임신 중이었을 때 학생에게 입에 담지 못할 여성 비하 발언을 듣고 한동안 충격에 빠져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다른 친구들은 또 다른 혐오의 감정을 키워갔다.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의 감정들이 만들어내는 구분 짓기, 편 가르기 문제가 학교 안에서, 교실에서도 발견되는 것을 늘 우려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회지를 읽고 아이들과 관련된 책을 읽고 한 번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참에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차별과 혐오의 감정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런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함께 읽기 위해 선택한 책은 김애란 작가의 <가리는 손>이다.

스포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간단히 내용을 이야기하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나'는 동남아시아 출신의 남성과 결혼해 '재이'라는 아이를 낳았고 지금은 이혼을 하고 영양사로 근무하며 혼자 재이를 키운다. 재이는 다문화 가정 아이라는 차별과 무시를 경험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십 대 청소년들이 폐지 줍는 노인과 시비가 붙어 그를 폭행했는데 결국 노인이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장면이 찍힌 cctv에는 재이의 모습도 담겨있다. 사건에서 재이는 주동자가 아니라 단순히 목격자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나는 '불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재이에게 그 노인의 장례식장에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한다.


먼저 책을 읽기 전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혐오표현이  무엇이 있는지, 어디에서 그런 표현들을 보았는지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인종차별이나 혐오표현의 단어를 쓰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계열 인종을 비하하는 단어를 개그나유머 소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봤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급식충이나 중2병이니 하는 것들이 청소년인 우리를 비하하는 것 같아 듣기 싫었다는 아이도 있었고 그게 비하표현인 줄 몰랐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 생각보다는 아이들이 혐오표현을 자주 사용하거나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실제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너무 일상적으로 쓰여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엔 작품을 함께 읽었다.

작품을 꼼꼼하게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작품과 관련된 문제를 하나씩 내기로 했더니 아이들이 좀 더 집중하면서 읽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쯤 몇몇 아이들은 '헉!', '헐~' 이런 탄성을 쏟아냈다.


책을 읽고 나서 인상 깊은 구절이나 장면을 함께 나누었다. 역시나 마지막 반전 부분이 꽤 인상적이고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재이 엄마의 감정에 집중한 아이도 있었다. 재이가 엄마에게 "엄마는 한국인이라 몰라"라는 말을 하는 부분에서 엄마도 재이가 다문화가정 아이로 인해 차별받는 그 마음을 염려하지만 정작 엄마도 당사자가 아니라 그 감정을 똑같이 느끼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고, 엄마가 불쌍하다, 안쓰럽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혼하고 혼자 여성을 키우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수군거림의 장면, '틀딱'이라는 노인에 대한 혐오 표현 등 아이들은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차별과 혐오의 모습을 찾아냈다.


이번엔 책 내용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도록 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그런 차별과 혐오를 받은 기억은 별로 없다고 했다. 반면에 주위에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친구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본 적이 있었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었다.

재이 엄마는 차별당하는 아이를 걱정하지만 "너희 아빤 여기 일하러 온 사람 아니야. 공부하러 온 사람이야"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 그러네요~재이엄마 역시 일하러 온 동남아 사람에 대한 차별이 담긴 말을 했네요~ "

우리는 차별받는 사람인 동시에 차별하는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겐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나는 아니니까' , '내 일이 아니니까'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나도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는 차별의 말을 할 수 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만든 질문 두 개씩 돌아가며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노인 폭행 사건과 재이와의 연관성을 궁금해했다.

주동자이냐 목격자이냐에 대해서도 왜 신고를 안 했냐는 질문에

"'엄마에게 학원 안 간 것을 들킬까 봐'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날은 학원 수업이 없던 날이고..

재이는 단순히 목격자가 아니라 방관자라고 볼 수 있어요"

 어쩌면 그 무리가 한 패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쏟아져 나왔다.

재이가 어느 무리에서는 약자인데 또 어느 무리에서는 강자가 되기도 한다는 말에 요즘 학생들이 잘 보여주는 약강강약의 태도를 짚어주기도 했다.


"엄마는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아,, 나도 예전에 가장 친한 친구가 내 험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막상 친구에게 진짜냐고 확인해 보려니 진짜일까 봐, 친구를 잃을까 봐 두려웠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재이엄마의 감정을 이해해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평소 해보지 않거나 가볍게 생각했던 일들이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고 했다. 책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은 평생 안 하고 살거나, 마주하게 되더라도 인식 못하고 지나쳐버렸을 거라며 이젠 그러지 못하게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 어렵고 부담스러운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책을 사이에 두니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이 쏟아져 나와서 신기하고,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책으로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희망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나에게도 수확이 큰 시간이다. 함께 읽고 대화하는 자리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좀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그런 시간들이 모여 차별과 혐오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어 선생님이 중학교 때 사랑한 소설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