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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Nov 23. 2023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통해 알게 된 김민섭 작가께서 강릉에서 작은 서점을 내셨다고 했다. 지난번 연수를 들으러 춘천에 갔을 때 두 번째로 뵈었는데 이달 18일에 서점에서 작은 행사를 한다고 하셨다. 이 소식을 함께 공부하는 국어교사 모임 선생님들께 전했더니 몇 분이 함께 가자고 하였다. 마침 주말에 남편이 시댁에 갈 일이 있다기에 아이들도 함께 데려가주길 부탁했고, 그렇게 주말 자유시간을 얻어냈다.

20대 새내기 교사와 교직 10년 차에 접어든 나 그리고 20년이 넘으신 선배교사 이렇게 셋이 강릉에서 만났다. 점심쯤 도착한 우리는 초당에서 순두부찌개를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후배교사의 연애이야기에 같이 설레하고, 선배교사의 깊이 있고 연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업 사례에 감탄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늦은 오후가 돼서야 '당신의 강릉' 책방으로 향했다. 책방은 골목에 위치한 데다가 작은 간판이 하나 걸려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실내는 6~8명이 둘러앉을만한 큰 탁자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작았지만 정감이 느껴졌다. 작가님은 1인 출판도 겸하고 계셨기에 직접 기획하고 만든 책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오늘 행사의 초대작가인 허태준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다.

 

태준 작가님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으로서 한 지역의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던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써내셨다. 우리는 1시간 가까이 학생이면서 노동자였던 허태준 작가님의 삶의 이야기와 궁금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작가님은 글 쓰는 걸 싫어해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숙제로 내주신 일기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일기 쓰기 싫은 이유를 써오면 일기를 쓰지 않게 해 주신다고 하셨고, 작가님은 무려 6페이지에 걸쳐 쓰기 싫은 이유를 쓰셨다고 한다.

그 글을 읽은 선생님은 약속대로 앞으로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대신 글짓기부에 들어오라고 하셨고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람의 일이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하게 하니 말이다.

그 후에는 소설도 쓰고 문학청년의 길을 걸으며 예고 진학을 꿈꿨다고 한다. 하지집안 사정으로 특성화고에 진학을 했고 매일 꼬박 12시간씩 기계를 다루는 일을 했다고 한다.

직장생활과 기숙사 생활을 통해서  벌어지 약간은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경험들을 글로 쓰곤 했는데 그것이 책이 되었다.

서점에는 우리 말고도 두 분이 더 계셨는데 신기하게도 두 분 모두 교사였다. 그중 한 선생님은 본인이 시각장애인이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동료 교사들과 지내는 일도 많이 어렵다면서 작가님은 차별을 받으면서도 자신감 있고 극복하는 모습이 부럽다며 비법을 물으셨다. 난 질문을 들으며 의외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히려 시각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되셨으니 엄청 자부심을 가질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글을 쓰기 전까지 자신이 차별당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살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그전에 있었던 일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과거의 그 시간을 새로 돌아보게 되는 일이고, 그땐 몰랐던 의미를 발견하기도 된다고 그러니 선생님도 왜 자신감이 없고 어떤 부분이 힘든지 글을 꼭 써보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다 뭉클했다. 글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그날을 다시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그 시절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기도 한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국어 교사가 되기까지.. 글을 통해 그 선생님의 아픔이나 상처가 치유되길 속으로 바랐다. 그리고 나 역시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꽤 피곤했지만 마음은 벅차올라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시간들이 내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에서 한 사람이 오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또 하나의 세상을 마주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내 세상은 조금 더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좋다. 직접 만나 것도 글로 만나는 것도 모두 좋다.  오늘처럼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은 날은 마음이 꽉 찬기분이다. 이런 날은 나도 누군가의 가슴을 꽉 채워주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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