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by 슈퍼엄마

십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질문이 있다.

늦은 저녁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였는데 공부는 곧잘 하고 착실했지만 눈치도 많이 보고 주눅이 들어있는 모습이 신경 쓰이곤 했다. 어머니랑 단둘이 살고 있고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렵다는 정도가 그 아이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평소 특별히 가깝게 지낸 건 아니었는데 저녁시간에 전화라 ‘무슨 일이 있나?’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00아 무슨 일 있어?”

“선생님, 물어볼 게 있어서요..”

“응 뭔데?”

“부모님이 가난하고 불행하게 살아도 저는 행복해질 수 있어요??”

“….”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해서 잠시 침묵했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질문에서 아이의 많은 상황이 짐작되었다.

“그럼! 당연하지~ 부모님이 불행하다고 너까지 불행하지 않을 수 있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지!”

애써 밝게 힘주어 대답해 주었다.

“네…알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는 짧게 끝이 났다.

그 아이는 내 말을 믿었을까?

그 후에 그 아이는 눈이 마추쳐도 별다른 이야기 없이 가볍게 목례만 하고 나를 지나치곤 했다.

나도 따로 불러서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고, 오히려 모른 척해야 하나 싶어 그냥 지나쳤다.

그땐 나도 결혼 전이고 미숙해서 좀 더 현명하게 대답을 해주지 못한 것 같아 오랫동안 후회가 남았다.

그 아이는 지금 20대 청년이 되었을 텐데 가끔 생각이 난다.

행복하냐고.. 묻고 싶다.

학창 시절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중학교 때 갖고 싶은 것 못 갖고, 학원 못 다니고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수업료를 낼 수가 없었다. 집 가까이에 있는 고등학교 가라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멀리 있는 사립 고등학교를 지원해서 간 것이 후회되었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수업료 고지서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고지서를 내밀면 부모님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돈은 주시지 않았다. 언제 준다는 기약도 없으셨기에 학교에 가서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깜빡하고 못 가져왔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내일까지는 꼭 내야 한다고 잊지 말고 꼭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대답을 못하고 교무실에서 울고 말았다.

그때 선생님의 도움으로 장학금 신청을 해서 무사히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때는 돈 때문에 싸우시는 부모님, 아픈데도 병원비를 걱정하는 부모님, 늘 힘겨운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아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질 것 같지 않았고, 내 미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충수업 문제집을 사러 간 서점에서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라는 책을 보게 되었고 ‘희망’이라는 단어에 끌려 그 자리에서 책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이 너무 갖고 싶어서 보충수업 문제집 살 돈으로 그 책을 사고 말았다.

그리고 몇 번을 읽었다.


가발공장 여공에서 하버드에 진학하고 미 육군 소령으로 재직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 후로도 인생의 역경을 이겨내고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읽었다.

그때까지 내 주위에는 희망을 말하는 이가 없었지만 그때 내가 읽은 책 속에는 늘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늘 포기하지 않았고 꿈을 꿀 수 있었다.

내가 마음먹은 만큼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고 믿음이 약해질 때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고는 했다.

인생의 힘든 순간,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책에서 답을 구하려고 했고 희망을 발견하고 힘을 내기도 했다.

십여 년 전 그때처럼 누군가 나에게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책을 한 권 선물해 주고 싶다.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