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죽순이

by 슈퍼엄마


외판원을 통해 구매한 내 인생 첫 책을 꽤 오랫동안 읽었다. 시간이 지나고 많이 자랐음에도 어려운 집안 살림에 책을 살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가끔 집에 놀러 오는 친구가 내 책장을 보고 말했다.

"어? 이 책 나 애기 때 읽던 책인데? 너 요즘도 이거 읽어?"

"어?.. 아니 나도 예전에 읽던 책이야.."

"요즘엔 뭐 읽어? 집에 책 없어?"

"..."

친구들과 이런 대화가 오고 가면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네 집에는 어떤 책이 있을지 궁금했다. 그 후로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책장 구경부터 했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친구에게 빌려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어느 날, 늘 친구네 집에 가서 책을 빌려 오는 내 모습이 속상하셨던지 엄마가 처음으로 도서관에 데리고 가셨다. 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생전 그렇게 많은 책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책이 가득 들어차 있던 그 공간은 어린 내게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우와.... 이거 다 누구 책이야? 나 빌려가도 돼?"

"응. 여기 있는 책 다 빌려 볼 수 있어"

"뭐? 정말이야? 여기 있는 책을 다 볼 수 있다고??"


믿기지 않았고 한편으로 너무 기뻤다. 앞으로 도서관에 매일 와서 여기 있는 책을 다 읽어보고 말겠다는 야무진 꿈도 꾸었다. 그날 내 얼굴 사진을 붙이고 코팅을 한 도서관 회원증을 발급받았다.


그 후로 학교가 끝나면 뻔질나게 도서관에 드나들었다. 친구들과 같이 오는 날도 있었지만 친구들은 학원에 가야 했기에 주로 혼자 오는 날이 많았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다가 다 못 읽으면 빌려가서 읽었는데 좋아하는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때는 대출을 하면 책 맨 뒷장 도서카드에 수기로 이름을 작성했는데 카드에 내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매우 뿌듯했다. 책 속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만 같았다. 친구랑 경쟁하듯이 누가 더 많이 읽나 내기도 하고, 방학 동안 몇 권 읽기 등을 목표로 삼기로 했었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어쩐지 근사해 보여 우쭐대기도 했다. 어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소녀였지만 어쩐지 여기 있는 책들을 다 읽고 나면 정말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 것만 같았다.


초등학생 때는 위인전을 즐겨 읽었다. 특히 헬렌 켈러나 퀴리부인, 잔다르크 같은 여성인물들을 좋아했다.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꿈을 이루어낼 때는 마치 내일처럼 기쁘기도 했고 꿈을 이룬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도서관은 내게 즐거움을 주는 놀이터이자, 멋진 미래를 꿈꾸게 하는 학교였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많은 것들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배울 수 있었다. 지금도 내가 일하면서 가장 자주 가는 장소는 도서관이다. 수업이 없거나 머리 아픈 문제로 지칠 때 도서관에 온다. 가끔은 너무 화가 나서 도서관에 왔다가 책을 한 권 빼내어 천천히 읽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고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은 우연히 꺼내 읽은 책에서 해답과 같은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여전히 도서관은 내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학교이자, 마음의 위안을 주는 안식처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 어디에나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행운이자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