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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un 14. 2024

그 해 여름, 상사병에 걸리다

수능 시험을 본 다음날부터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녔다.  마침 바로 집 근처 고깃집에서 '알바구함' 전단지를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첫 알바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가서도 알바는 계속되었다. 나에게 아르바이트비는 용돈벌이가 아니라 생활비 마련이었기에 알바를 끊을 수 없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아르바이트생의 하루도 참 고되었다.

고깃집에서 서빙하기, 피자집 주방에서 피자 만들기,  백화점에서 물건을 판매하기.. 그 어느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랑 잘 맞는 알바를 찾게 되었으니 그건 바로 편의점 알바였다.


다른 알바에 비해 시급은 적은 편이었으나 고깃집이나 피자집보다 육체적으로 덜 힘들었다. 게다가 백화점만큼 진상 고객도 없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엔 틈틈이 책도 읽을 수 있었고, 혼자 있을 때 친구들이 놀러 오기도 했다.

물건 발주하는 일과 상품 진열, 그리고 고객 응대가 적성에 맞기도 했다.


그 해 여름에도 편의점 알바를 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를 했는데 대학교 근처고 마침 여름방학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근처 상가의 직원들이 자주 들렀다.  맞은편 안경원의 직원도 그중 하나였다. 키가 훤칠하고 피부가 하얗고 짧은 머리에 와이셔츠가 잘 어울렸다. 그를 보는 게 무료한 하루의 낙이였다. 나이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나는 언젠가부터 애타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는 보통 오전에 담배를 사러 들렀고, 오후에는 졸음과 피곤을 쫒기 위해 음료나 간식거리를 사러 왔다. 그가 즐겨 먹는 간식은 천하장사 소시지였다.


"던힐이요-"라는 짧은 단어를 말할 때 '던'보다 '든'에 가까운 발음과 특유의 억양을 느껴졌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전라도 분이신가 봐요?"

"아따, 으찌 알았어요?"

"말씀하시는 게.."

"사투리가 티가 나요잉?"

"네..^^"

"즐라도 광주가 집이에요"

"와.. 멀리서 오셨네요."

나의 용기 덕분이 그와 조금 친해졌고 그는 한 번 오면 나랑 몇 마디씩 주고받곤 했다.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들뜨고 설렜다.


그러나 그 해 여름은 왜 이리도 짧던지...

여름방학이 끝나면 나도 학교에 다녀야 해서 그 시간엔 알바를 할 수가 없고 그건 더 이상 매일 그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ㅠㅠ. 일을 그만둘 날이 다가오자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아 이런 걸 상사병이라고 하는구나.' 그때처음 알았다.


하루는 시름시름 앓는 나를 보다 못한 친구안경원에 찾아갔다. 그리고는 "저 앞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애가 제 친구인데요. 그 친구가 아저씨 좋아해요"라고 냅따 불어버린 것이다.

세상에.. 이제 그를 어찌 보나.. 아니, 이제 그가 안 오면 어쩌지..? 그리고 나이도 모르는데 넌 아저씨가 뭐냐??


애꿎은 친구를 탓하고 있는데 어느 날 그가 왔다.

"든힐이요-"

"네.."

"몇 살이에요?"

"네?"

그가 나의 이름과 나이를 물어봤다. 그리고 나에게 연락처를 줬다. (꺄악)

나는 알바를 그만두고 그에게 연락을 했고 그 해 여름이 가기 전, 우린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렇게 첫 데이트를 했다.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그는 나보다 7살이 많았다. 그 당시는 그게 엄청난 차이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에겐 7명의 누나가 있다는 것이다. 큰 누나는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고 부모님은 칠순이라고 하셨다. 부모님이 연세가 많아 결혼을 서두른다는 야기도...


난 그날 이야기를 완곡한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를 생각하며 즐겨 들었던 이승환의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들으며 그 마음을 접기로 했다


그 해 여름 무더위만큼이나 짧고 강렬했던 나의 짝사랑.

 요즘처럼 날씨가 더워지면 한여름 무더위에 열심히 알바를 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20대가 떠오른다. 오늘은 상사병을 앓을 만큼 순수하고 꽃다웠던 그 이야기도 함께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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