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자주 볼 수 없었던 친구와 지인들을 방학을 이용하여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래 알아온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학창 시절엔 매일같이 붙어 다닐 정도로 친했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은 사는 모습이나 관심사, 가치관 등이 너무 달라져있었다.자주 만나야 할이야기도 생기지,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근황을 너무 모르니 할 얘기가 마땅치 않다.그렇다 보니 깊은 대화가 어렵고 근황토크나 가벼운 이야기를 주로 나눌 뿐이었다.오히려 나이 들고 사회생활 하며 친해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나 생각, 관심사가 비슷하며 말이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친구도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다 옛말 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저녁 퇴근 무렵에 한 통의 전활 받았다. 나와 고등학교 시절 절친했던 친구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엔 나와 같은 이름이 나를 포함해 세 명이 있었다. 요즘은 반 편성할 때 그런 걸 다 고려하는데 그 당시엔 그런 배려도 없었나 보다.
그중에 한 친구는 얼굴이 매우 예뻤다. 함께 시내에 나가면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마침 같은 동네, 그것도 집 근처에 살고 있어서 매일 등하교를 함께 하게 되었다. 친구는 예쁘고 차가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어리바리하고 순진한 데가 있었다. 집에도 자주 놀러 가곤 했는데 친구의 아빠가 특히 날 예뻐해 주셨다.
우린 버스 안에서 cd플레이어의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끼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쿨의 노래를 들었다. 지금도 쿨의 'all for you'나 조성모의 '아시나요'를 들으면 순식간에 그 시절 버스 안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우린 부모님으로 인해 비슷한 상처가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위로하며 갈수록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사춘기가 좀 늦게 왔는지 우린 고2 -고3 때 방황을 하기도 했다. 그 친구가 공부도 안 하고 남자친구랑 놀러 다니고 하면 난 친구에게 정신 차리라며 모진 말을 하곤 했다. 친구를 위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는 서운해하거나 불쾌해 하기는커녕 자기를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방황하고 정신 못 차릴 때 친구는 단 한 번도 내게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다. 늘 너는 알아서 잘할 거라고 날 믿어줬고, 괜히 심술이 나서 삐딱한 말을 해도 진심이 아닐 거라며 믿지 않거나, '네가 오죽하며 그런 말을 하겠냐'며 오히려 날 위로했다. 부모보다 친구가 더 좋은 시절이었다.
평생 가까이 살면서 의지하고 지내고 싶은 친구였는데 친구는 25살에 결혼을 하고 몇 년 뒤 남편과 선교생활을 위해 몽골로 떠나게 되었다. 친구가 떠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래도 1-2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오면 꼭 얼굴을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제 만난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바로 그 친구가 며칠 전에 한국에 들어왔고 볼일이 있어 강원도 쪽에 왔는데 내려가는 길에 전화를 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곧 퇴근시간이니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친구는 남편과 세 명의 아이까지 대동하고 집으로 왔다.
"아기 때 봤는데 벌써 이렇게 컸어?!"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좀 있다 우리 아이들도 집에 와서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우린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오히려 친구의 남편과 근황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그런데 친구와 함께 있는 동안 여고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들뜨고 설렜다.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나의 아픔도 기쁨도 늘 자신의 것처럼 슬퍼하고 기뻐해준 친구, 그런 친구가 있었기에 그 시절 방황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때론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같은 시절을 함께 지나온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 내 오랜 친구가 내겐 그렇다. 이제 얼굴을 봤으니 또 한동안 만나기 어렵겠지만 지구 어디에선가 나를 위해 늘 기도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