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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ul 31. 2024

육아 레벨 업!!!

오늘은 중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지혜와 여행을 왔다.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임용 공부도 함께 했고 같은 해에 임용에 붙어 둘 다 국어 교사를 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맞아 자연스레 여행도 자주 다녔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돌이 되기도 전에 지혜랑 둘이 여수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하필 그날 밤 아이가 밤새 열이 나고 토를 하는 바람에 아침에 눈뜨자마자 돌아온 적이 있다.
아직 돌도 안된 애를 두고 여행을 갔다고 울 시어머니는 물론 지혜네 어머니께서도 한소리를 하셨다. 그러다 그 후에도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다니곤 했다.  
내 친구 중 유일한 싱글이었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지혜는 우리가 만날 때마다 나를 배려하여 시간과 장소를 맞춰주곤 했다.
"너 없으면 난 누구랑 노냐?"
그럴 때마다 자긴 비혼이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던 지혜가 몇 년 전에 돌연 결혼을 선언했다.
그래도 아이는 안 낳겠다더니 마흔이 넘어 아이를 출산했고 22년 1월에 함께 속초 여행을 간 것이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그 해 4월 지혜는 임신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우리는 다시 속초로 여행을 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 각자의 아이들을 동반하고서라는 것.

지혜는 중학교 때부터 나랑 같이 다니면 언니냐는 오해를 자주 받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 더 있을 정도로 키가 클 뿐 아니라 성격 또한 장난기 많고 덜렁대는 나와 달리 조숙하고 철두철미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생활이나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어리광을 부릴 때마다 지혜는 늘 언니처럼 나를 다독여주곤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선 좀 달랐다.

그동안 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지혜가 오늘처럼 허둥대는 것을 처음 봤다.
아이가 돌발행동을 할 때마다 어쩔 줄 몰라했고 거기에 우리 집 애들 둘까지 가세하니 정신이 반쯤 나간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에 가기로 했는데 지혜는 바다에 아이랑 가는 게 처음이라고 두려워했다.
 내가 주차를 할 때까지도 "나는 그냥 카페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될까?" 하며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지혜는 아이와 함께 바닷가로 향했고 모래사장을 건너는 동안 이미 지쳐버렸다.
그때 난 아이들 물건 및 비상사태를 대비한 물품을 챙긴 가방을 등에 매고 한 손에는 튜브와 구명조끼 등의 물놀이 용품, 다른 손에는 모래놀이 세트와 돗자리를 둘러매고 두 아이를 앞세워 진두지휘하며 위풍당당하게 바닷가로 향했다. 힘들어하는 지혜의 보냉 가방을 하나 더 짊어지고  발 빠르게 이동함과 동시에 눈으론 파라솔의 위치를 스캔하고 최적의 장소를 맡았다. 일사불란하게 짐을 풀고 자리를 세팅하고 아이들에게 각각 구명조끼와 튜브를 채웠다. 그리고 편의점으로 뛰어가 지혜의 땀이 식기도 전에 캔맥주를 대령했다.
지혜는 이 모든 과정이 마치 '육아의 기계화'를 보는 듯하다고 했다.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달까? 망설임 없는 빠른 선택과 만약의 위험 사태를 대비한 단호한 말투와 눈빛까지!
3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낸 지혜가 나에게 이토록 찬사를 보낸 건 처음이었다.

"이게 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아니겠니?!"

10시쯤.. 아이들을 재우고 맥주 한잔할 거냐고 물어보니 지혜는 오늘 너무 힘들다고 그냥 자자고 했다.
"그러자!! 쉬어~ "
그러고는 누워서 오늘 일을 열심히 글로 쓰는데 지혜가 자꾸 말을 걸어왔다.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 학교 이야기.. 한창 이야기하다 지혜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난 아이를 낳고 아~ 내가 이런 걸 진짜 싫어하는구나! 처음 알았잖아~ 그동안 몰랐던 내 성격이었어"
"난 결혼하고 '내가 이런 모습이 있었나?!'  했다니까!!"
"하긴~  우리 30년을 알고 지냈는데도 엄마로서의 너의 모습은 낯설더라.ㅎ"
"역할이 계속 바뀌니 그에 맞게 업그레이드되는 거 아니겠니?!"
"난 엄마로서의 역할은 업그레이드가 안 된 듯해."
"넌 오늘을 계기로 한 단계 레벨 업 했어!!"
"그러냐? ㅎㅎ"
어린 시절의 나, 교사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나.. 조금씩 다른 모습이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할 때마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어놨던 내 한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어떤 역할은 여전히 어렵고, 어떤 역할은 여전히 낯설지만 경험치가 쌓이고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레벨~~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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