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둘째 어린이집도 방학이고, 첫째가 다니는 학원들도 전부 방학이다. 여름이 성수기인 남편은 아이들이 눈뜨기 전에 출근을 해서 아이들이 자고 나면 들어오니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다.
밖에 나가기도 무서운 날씨인데 종일 집에서 복작거리고 있자니 그게 더 힘들어 여름엔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자주 다닌다.
어제는 아이들은 데리고 시댁인 대전에 내려왔다.
시댁에 오기 전에 지인을 만나 함께 밥 먹고 차도 한 잔 마시며 근황 토크를 나눴다. 그리고 오늘도 지인을 만나서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왔다.
첫 발령을 강원도 원주로 받아 이곳에 산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친한 지인들이 거의 대전에 살고 있다. 자주 보기 어렵지만 방학이면 시간을 내어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얼굴을 보고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임용 첫 발령을 강원도 원주로 받았는데 대전 사는 남자랑 소개팅으로 만나 장거리 연애를 1년 하고 결혼했다. 결혼 후엔 주말부부로 지내다가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대전에 내려와 1년 반 정도 지내다 다시 원주 올라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러니 그 지인들은 대전에 살던 일 년 남짓한 그 기간 동안 사귄 것이다.
첫 번째 인연은 산후조리원 동기들이다.
남자에게 군대 동기가 있다면 여자들에겐 일명 '조동' -조리원 동기가 있다. 산후조리원에서 생활한 기간이 열흘인데 그때 서로 아이 젓 먹이며 출산 경험을 무용담처럼 나누며 친해졌다.
조리원에서 나갈 때 연락처를 주고받고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단톡방 알림은 쉬지 않고 울렸다.
"아이 분유는 몇 미리 먹이나요?"
"아이가 트림을 안 하는데 그냥 뉘우도 괜찮을까요?"
"아이가 언제쯤 통잠을 자나요?"
"뒤집기를 했군요! 축하해요!!"
우리는 아이 응가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며 건강을 체크할 만큼 찐~한 사이가 되었다.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경험을 함께 나눴고 남편도 알아주는 못하는 서로의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사이였다. 아기띠를 하고 만나 우는 아이 달래느라 편하게 앉지도 못했던 그 시절. 남들은.'저러고도 밖에 나오고 싶을까?' 싶었겠지만 그렇게라도 만나서 육아정보 교환하고 시댁 식구와 남편에게 서러운 일을 토로하는 게 유일한 숨구멍이던 시기였다.
두 번째 인연는 문화센터 동기들이다. 아이가 좀 크고는 유모차 끌고 동네 롯데 마트 문화센터를 다녔는데 그때 함께 수업 듣던 엄마들이다.
"아기 몇 개월이에요?"
"8개월 됐어요~"
"어! 우리 아이도인데?!!"
엄마들 나이도 비슷하여 문화센터 끝나고 아이 이유식 먹이고 낮잠 재우고 우리고 커피 한 잔 마시며 한 숨 돌리곤 했다. 동네에 살다 보니 서로의 집에서 만나 함께 공동육아하며 아이를 키웠다. 그렇게 지낸 지 일 년도 안 돼 내가 원주로 올라왔지만 여전히 안부 묻고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 나누며 지내고 있다.
사실 처음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대전에 내려왔을 땐 오직 남편에게만 의지했다. 그때 남편도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가족이 생겼다는 책임감 때문에 본인도 힘들어서 나를 돌볼 여력이 안 됐으리라. 그래서 그땐 자주 다투고 매일 눈물바람이었다.
그러다 '조동'과 '문센 동기'가 생기면서 종일 남편만 바라보던 내가 스스로 나만의 영역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인생에서 어느 한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 시기가 어렵고 힘들수록 더 그러하다. 그 시절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생이 덜 외롭게 느껴진다. 내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