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양
오늘의 필사,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그날의 기다랗던 정오, 이 땅의 지난하고 유구한 상경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방을 구한 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팥빙수를 먹었다. 깊은 피로 사이로 투명하게 부딪히던 얼음소리, 하얗게 질린 여름 하늘.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수도의 볕은 누군가를 탓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강렬했고 어머니는 고향행 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연신 땀을 훔쳤다.
필사의 변주
첫사랑은 초등학교 때 내 짝꿍이었다. 키가 작았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짝이 되었고, 작은 교실, 빛바랜 나무 책상, 종이 접기처럼 단순하고 순수했던 감정들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사랑이 뭔지도 몰랐지만, 마주 앉아 연필을 빌려주고, 간식을 나눠 먹고, 체육 시간에 같은 팀이 되면 괜히 기뻤다. 어쩌면 그 감정이 사랑이었을까.
세월이 흐르고 15년 만에 다시 그를 만났을 때, 마치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의 재회를 더욱 운명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돈이 많지 않았고, 주로 분식집에서 밥을 먹었다. 떡볶이는 우리의 소울푸드였고, 붉고 끈적한 소스가 입가에 묻어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마냥 웃으며 함께했다.
그날의 기다랗던 정오, 이 땅의 지난하고 유구한 사랑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마주 보며 함께 떡볶이를 먹었다. 입가에 묻은 붉고 끈적한 소스, 창피한 줄 모르고 마냥 좋아 실실 웃던 그 표정. 우리가 함께 보낸 수많은 날들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충분히 행복했고 너는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면서도 내게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아야 더 아름다운 법인지도 모른다.
그 후, 나는 서른이 넘어 남편을 만났다. 소개팅으로 시작된 관계는 특별한 운명도, 극적인 감정도 없었다. 우리는 차분하게 서로를 알아갔고, 격렬한 설렘 대신 깊은 안정감이 자리를 잡았다. 첫 만남은 스타벅스에서 이루어졌고, 저녁에는 참치회를 먹으러 갔다. 깔끔한 셔츠를 입은 그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순간, 나는 첫사랑과는 다른 차원의 편안함을 느꼈다. 그의 곁에서는 과거의 사랑에서 느꼈던 애틋함 대신, 현실을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서의 믿음이 생겼다. 첫사랑이 설레는 마음을 담은 한 편의 시라면, 지금의 사랑은 오랜 시간 공들여 쓰는 한 권의 책 같았다.
사랑은 한 가지 모양만 가진 게 아니었다. 첫사랑은 어린 날의 설렘을 간직한 채 추억으로 남고, 지금의 사랑은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과거의 사랑이 가슴 뛰는 순간들을 주었다면, 지금의 사랑은 따뜻한 일상과 안정감을 선물한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랑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그에 맞는 모양으로 변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