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마음은 닮는다.

by 슈퍼엄마

동생은 운동을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4학년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 그 시절의 운동부는 요즘처럼 수업 후 운동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 시절엔 '엘리트 체육'이라는 이름 아래 학교에 오면 하루 종일 운동만 했다. 교실보다 운동장이 익숙했고, 선생님보다 코치를 더 자주 마주했다.

훗날 내 동생이 모교를 찾았을 때, 누군가가 그의 뒤통수를 툭 치며 "너 나 몰라?" 했고, 그는 멋쩍게 웃으며 "누구시죠?"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그의 1~2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동생의 운동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암투병 중이던 어머니, 가정에 무심하던 아버지, 그리고 감독에게 찔러 넣을 봉투 하나 건넬 수 없던 형편.(그 시절엔 봉투가 필요했다.) 할 수 없이 동생은 몸으로 때웠다.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기회를 양보하며 그 시간을 버텼다.


내가 고3, 동생이 고1이던 해.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전국 소년 체전이 열렸고 동생이 출전했다. 그때까지 동생의 시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응원하고 싶었다. 조심스레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경기장을 찾았다. 내가 그의 시합을 직접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경기장의 모습은 매우 생소했고,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놀라기도 했다.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팀은 물론 그 가족까지 총 출동해 매우 혼잡하고 소란했지만 동생은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혼신을 다해 싸웠다.

나는 그가 한 대 맞을 때마다 나도 같이 움찔했다. 그리고 눈물을 훔쳤다.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동생이 얼마나 힘들게 연습했을지를 생각하니 그동안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응원 온 가족들에게 보답이나 하듯이 동생은 그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덕분에 대학 진학이라는 기회도 얻었다.


25년 전 그날이 생각나는 이유는 오늘이 우리 아들의 태권도 시합날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하던 아이는 수영, 축구, 스케이트보드까지 두루 경험했지만, 하필이면 태권도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것도 유전일까?)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장 도복을 입고 체육관으로 향한다. 수업은 원래 1시간이지만 "조금만 더 해도 돼요?" 관장님께 묻고, 두세 시간을 연습한다. 초등학교 4학년, 아직 여린 몸인데 시합을 앞두고 체중을 조절하겠다며 스스로 먹는 양을 줄이기까지 한다. 그 모습이 25년 전 내 동생과 닮았다.


아이의 첫 시합. 오전 첫 경기였다. 남편과 딸, 온 가족이 출동했다. 시합이 시작되자 25년 전의 내가 다시 떠오른다. 그날도 이렇게 심장이 뛰었는데.. 아이가 한 대 맞을 때마다 또 몸을 움찔한다. 숨을 멈춘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 첫 경기에서 끝이 났다. 기가 죽었을까 걱정하며 다가갔다.

“어땠어?”
“재밌었어!”
해맑게 대답하는 아들. 주먹에 얼굴을 맞아 벌게진 뺨을 쓰다듬으며 아이를 안았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돌아오는 길, 나는 또 울컥하고 만다.

"아들이 졌다고 우는 거야?"

그 시절 나와 동생의 추억을 알 리 없는 남편이 놀리듯 묻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동생 생각이 많이 났다. 그 시절, 무심하게 지나쳐왔던 우리의 시간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의 모습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곁에 있는 사람도 달라졌지만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은 그렇게 닮아있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건, 그 사람의 마음을 함께 감당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가 걸어가는 길을 끝까지 바라봐주는 일이다.

아이가 무엇을 하든, 기꺼이 응원하고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부모가 되고 싶다. 응원한다는 건 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어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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