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 1학년은 단 두 명뿐이다. 1학기에는 셋이었지만, 한 명이 전학을 가면서 지금은 나와 두 학생이 삼각형의 세 꼭짓점처럼 앉아 수업을 한다. 동성이었다면 붙어 앉아 떠들기도 하겠지만 그 둘은 성별도 다르고 내외하는 듯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그 둘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주면 곧잘 말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시 경험 쓰기 수행평가를 위해 도서관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보통 시집을 읽으면 아이들이 재밌는 구절을 서로 돌려 읽으며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나곤 하는데, 이곳은 적막에 가까웠다. 적막을 깨고 싶어 음악을 틀어주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차분했다.
첫 시간에 남학생이 내게 시집을 내밀며 “선생님, 시가 좀 매워요.”라고 했다. 아이의 표현이 신선했다. 어떤 시를 읽었을까 궁금해서 바로 읽어봤다.
예상치 못한 단어들이 시 안에 섞여 있었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흠칫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편의 시를 읽고 나서는 어렵게만 여겼던 시에 대해 친근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를 읽으며 자신의 경험과 닿아있는 시 한 편을 고르게 했다.
여학생은 비교적 빨리 골랐지만, 남학생은 한 시간 내내 시를 고르지 못했다. 다음 시간에는 여학생이 결석하여 나와 남학생만 도서관에 앉게 되었다.
“경험이라는 게 꼭 거창할 필요는 없어. 작은 일도 괜찮아.”라며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들의 글을 예시를 보여주자, 아이는 마침내 시 한 편을 골랐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제가 왜 시를 못 골랐는지 알겠어요. 전 살면서 특별한 경험이 없었던 것 같아요. 평범해요.”
“평범한 삶은 어떻게 생각해?”
“좋은 것 같아요.”
나는 그 대답이 참 다행스러웠다. 특별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고, 평범함 속에서 만족을 찾는 모습이 성숙해 보였다. 동시에 10대 시절 이미 크고 작은 비극을 겪어야 했던 내 삶을 떠올리니, 오히려 그 아이의 평범함이 부럽기도 했다.
아이의 선택은 ‘사과’와 관련된 시였다. 그는 예전엔 사과를 하지 않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 시를 골랐다고 했다. 실수였고 딱히 잘못한 거 같지도 않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라 사과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 말에 나는 집에서 겪었던 아이들과의 일이 떠올랐다. 큰아이가 동생의 장난감을 밟았을 때,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왜 사과해야 하냐”라고 했던 모습 말이다. 그때 나는 혹시 아이가 이기적인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이 수업을 통해 깨달았다.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고, 자라면서 얼마든 배우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시를 읽고 이야기 나누며 아이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웠다. 평범한 삶이 주는 힘, 성장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혀가는 마음의 자세. 그 앞에서 교사인 나 또한 겸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