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있는 이야기 3

시월의 현상

by 은빛루하




“어쩌면 우리는 그날의 온도를,

한 곡의 노래로 기억하는 건지도 몰라요.”


이 이야기는

도재명의 ‘10월의 현상’

그 가을밤의 떨림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워라, 지난 시월의 현상



혜화동 골목길,

싸늘한 가을바람이 낙엽을 몰아 후드득,

땅을 두드렸다.

나는 그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을 하늘은 투명하게 맑았고, 끝자락의

주황빛 노을이 눈을 시리게 비췄다.

이맘때, 노을 지는 하늘을 보는 게 좋다고 했던 너.

네 귀밑머리가 귀엽게 귀에 걸리고,

뾰족한 콧날이 그림처럼 예뻤던 너.

"잠깐 보러 가도 돼? 혜화동 근처야.

그 버스정류장에서 보자."

밤 11시쯤 걸려온 전화는

너의 목소리만 남기고 뚝 끊어졌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괜한 기대가 밀려왔다.

다시금 설렘이 차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너를 오래 기다리게 할까 봐

나는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손등으로 훔쳤다.

"천천히 와도 되는데, 뛰었어?"

집에 가는 길에 생각나서 왔다며 웃던 너는

작은 손으로 내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 손끝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부끄러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웃었다.

'참, 나는 언제 이렇게 바보가 됐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틈을 나와,

창이 환히 보이는 카페,

공연을 마친 불 꺼진 간판의 극단들,

야외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우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풍경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매캐하면서도 고소한 고기 냄새가

가을밤 공기와 섞여 코끝을 간지럽혔다.

가을바람이 제법 차갑게 불어오는

10월의 혜화동 골목길을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너의 따뜻한 손을 잡고 걷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늘 용기를 내려다 결국은 내려놓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내 복잡한 현실 속에 너를 데려올 수 없었다.

이토록 맑고 예쁜 너와 함께하고 싶지만,

내 현실 때문에 네가 울게 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차마 용기를 낼 수 없는, 너를 위한 배려였다.


너의 재잘거리는 이야기는 주변 소음을 뚫고,

내 귓가에 흥얼거리는 노래처럼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자

잡고 싶었던 손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가을밤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너의 목소리가 잔잔한 노래처럼 귓가에 머물렀다.

나는 이 밤이 조금만 더 느리게 흘러가길,

너의 말이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마, 오늘이 끝나면

다시는 이렇게 웃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기대할 수 없는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그리워하겠지.




그날의 바람, 그날의 온기, 그날의 너.

나는 여전히,

그 시월의 현상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함께 듣기: [도재명 – 10월의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