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눈빛이어서 다행이다
모티브 : 김필 오르막길
슬픈 눈빛이어서 다행이다
오르막길
눈길 닿은 그 길은
아득한 오르막이었다.
놓아버린 손,
말없이 시작된 발걸음.
머리칼 스치는 바람은 반가웠으나,
방금 마음을 훑고 간 바람은
가라앉았던 상념과 감정들을
먼지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길섶 나뭇잎은 휘휘, 들풀은 스스슥
시선을 붙잡으려 속삭였지만,
오르막은 너무 가팔라
고개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잠시 놓았던 그 손,
이제는 발걸음으로 시선이 닿는다.
알 수 없는 표정, 거친 숨소리,
얼굴에 맺힌 땀방울, 그리고 슬픈 눈.
그래,
슬픈 눈빛이어서 다행이었다.
내 삶의 유일한 기댐이었고, 설렘이었으며
잊지 못할 다정함이었으니.
이 길의 끝에서
만약 그 눈빛이 슬픔이라면
나는 그 슬픔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리라.
함께한 수많은 시간,
물결처럼 빛나지만 모두 담을 순 없었다.
붙잡았던 반짝임은 그대로 흘러갈 테고,
모든 것이 스쳐간 뒤 남는 것은
오직 그대의 눈빛뿐이리니.
다시는 잡을 수 없을 우리 손.
그대와의 이별이
오르막길이라 다행이다.
저 끝에 닿아
목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이,
흐르는 땀방울이,
내 눈물임을
아무도 모르게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