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에 남겨둔 마음
모티브 : 이소라 "바람이 분다"
한강대교 위를 달리는 길,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리니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살갗을 스치며 들어온다.
가을을 머금은 바람,
그리고 여름 내내 습기 가득한 마음에 고인
지난 추억들이 차창으로 실려온다.
그때도 가을바람을 기다리던 늦여름이었다.
친구들과 떠난, 등대가 있던 바다.
배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섬이었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파도를 가르던 배 위,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갈매기의 날갯짓이 눈부셨다.
너울거리는 바다가 붉은빛으로 물들 무렵,
우리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무거운 배낭을 꾸역꾸역 메고 올랐던 언덕 위
허름한 민박집.
짐을 풀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오이며 상추를 씻어냈다.
고기를 구우며 마셨던 소주 한 잔.
혀끝에 아직도 남아있는 그때의 달콤한 소주 맛에
잠시 취기가 올라오듯 얼굴이 붉어졌다.
축축한 바닷가 마을에 내리던 빗소리가 좋아 우비를 챙겨 입고 걸었던 길.
해가 어스름 진 마을을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오르던 등대에서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재잘거리며 참 즐거웠었다.
그때 언덕을 오르며 잡았던 그의 손은,
작은 소리로 내게만 들리게 노래를 불러주며
나의 모든 감각을 깨웠지.
지금도 비가 오는 날 눈을 감고 등대를 떠올리면
그때의 노래가 마음으로 흘러온다.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우리가 함께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날의 기억
머리가 짧고 웃음이 많았던 A,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대던 B.
묵묵히 미소 지으며 덤벙거리던 우리를 챙겼던 C.
재치 있는 입담으로 쉴 새 없이 즐겁게 해 주었던 D
그리고 나.
시간이 지나며 각각의 삶 속으로 들어간 우리는
그때의 웃음과 입담. 미소는 여전하지만
마음 가득 행복으로 자유로웠던 시절의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며, 등대가 있던 섬여행을 회상할 때면
'그때가 좋았지'라는 침묵 속에 모두 잠잠해진다.
그렇게 눈부셨던 우리의 추억도 바람처럼
흘러가 버렸다.
그 순간을 마음에 꽁꽁 묶어두었더라면
우리의 순수했던 마음은 그대로였을까?
달리는 차창으로 들어오는 가을바람은
여름의 습한 공기를 몰아내지만,
내 마음 한편엔 여전히,
그때의 노래가 바람처럼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