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사
머리칼을 스치는 바람에서 가을이 느껴졌다.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반팔 사이로 스며든 바람은 낯설 만큼 서늘했다.
나는 어깨에 걸쳐둔 겉옷을 여미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 뼘쯤 더 높아진 하늘 위로 가을이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급히 닥친 계절은 아니었다.
땀이 줄줄 흐르던 한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나는 이미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힘 빠진 풀섶의 빛깔 속에서도,
아침저녁의 실바람 속에서도,
보슬비가 흩날리던 오후 속에서도
가을은 이미 내 곁에 와 있었던 것 같다.
아침 출근길, 차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불어왔다.
‘가을이라 좋다.’
혼잣말처럼 떠오른 그 생각에,
가을이면 맞이할 풍광과 써 내려갈 이야기들에 마음이 살짝 설렜다.
그러다 문득,
팔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흘러가던 구름
아래에서 느꼈던 자유와,
소나기 지나간 길 위 풀벌레 소리,
오르막을 오르며 흘렸던 상쾌한 땀방울,
그리고 눅눅한 여름밤 편의점 앞에서 마셨던
차가웠던 맥주 한 모금이 떠올랐다.
그제야 생각이 미쳤다.
나는 여름에게, 인사를 했던가?
뜨거운 숨결 속에서 글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
집중의 기쁨을 선물해 준,
그 열정의 계절에게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채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인사를 놓쳤다면,
멋진 말로 포장하지 않고 이렇게 전하고 싶다.
너의 뜨거움이 있었기에,
나는 이 가을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었다고.
안녕, 다시 만날 내 여름아.
그리고
어서 와, 기다렸던 내 가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