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있는 이야기 16

인 사

by 은빛루하

유희열. 여름날


머리칼을 스치는 바람에서 가을이 느껴졌다.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반팔 사이로 스며든 바람은 낯설 만큼 서늘했다.

나는 어깨에 걸쳐둔 겉옷을 여미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 뼘쯤 더 높아진 하늘 위로 가을이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급히 닥친 계절은 아니었다.

땀이 줄줄 흐르던 한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나는 이미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힘 빠진 풀섶의 빛깔 속에서도,

아침저녁의 실바람 속에서도,

보슬비가 흩날리던 오후 속에서도

가을은 이미 내 곁에 와 있었던 것 같다.

아침 출근길, 차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불어왔다.

‘가을이라 좋다.’

혼잣말처럼 떠오른 그 생각에,

가을이면 맞이할 풍광과 써 내려갈 이야기들에 마음이 살짝 설렜다.


그러다 문득,

팔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흘러가던 구름

아래에서 느꼈던 자유와,

소나기 지나간 길 위 풀벌레 소리,

오르막을 오르며 흘렸던 상쾌한 땀방울,

그리고 눅눅한 여름밤 편의점 앞에서 마셨던

차가웠던 맥주 한 모금이 떠올랐다.

그제야 생각이 미쳤다.

나는 여름에게, 인사를 했던가?

뜨거운 숨결 속에서 글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

집중의 기쁨을 선물해 준,

그 열정의 계절에게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채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인사를 놓쳤다면,

멋진 말로 포장하지 않고 이렇게 전하고 싶다.

너의 뜨거움이 있었기에,

나는 이 가을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었다고.


안녕, 다시 만날 내 여름아.


그리고


어서 와, 기다렸던 내 가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