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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월 Jul 11. 2021

어서 은발이 되고 싶어

백발 [白髮]
하얗게 센 머리털.
1.white hair  2.snowy hair

은발 [銀髮]
1. (기본의미) 은빛 머리털.
2. 노인의 하얗게 센 머리털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1.silver hair  2.gray hair




안다.

나 같은 동양인 생김새에 백발이 어울리기 쉽지 않다는 것.

더구나 완전한 백발이기보다는 검은색이 드문드문 섞인 머리가 되기 십상이지.


그러나 나는, 백발이든  gray hair든 얼른 되고 싶다고 생각한 지 한참이다.

이렇게 빨리 그런 바람을 가지게 된 것의 7할은, 새치가 일찍 생기는 머리카락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은 해야 하는 새치염색. 미용실을 거의 가지 않는 내가 집에서 더는 새치염색 감당이 안 돼서 염색 전문 미용실을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아주 큰 번거로움을 느끼고 있다. 나는 긴 머리라 다듬는 것도 집에서 대충 셀프로 해결한다. 미용사들이 싫어할 손님 유형이다.


그런데 새치 염색 때문에 예약하고 시간 맞춰 가는 일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지금도 해야 할 시기를 일주일을 지나고 있다.


나이를 몇으로 보든, 그러니까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든 말든 나는 정말 상관없을 것 같아서  진지하게 아이에게 물었다.


- 나 염색 안 하고 그냥 하얀 머리 하면 어떨 거 같아?

- 응, 뭐 괜찮을 거 같아.

- 그럼 이제부터 그냥 둘까?

-...... 괜찮긴 하지만 지금 오십도 안 된 엄마 나이에 그건 좀 그렇지 않아?


음, 아직은 싫다는 얘긴가 보다.

그래. 또 완전히 셀 때까지 그 기간 동안  어중간하게 얼룩덜룩 지저분할 수도.

그래서 나는 미루고 미루던 끝에 오늘, 미용실 예약을 할 예정이다.  예정.




여전히 예쁜 것이 좋다. 예쁜 사람을 보면 자꾸 보고 싶고, 예쁜 풍경을 보면 기분이 좋다.

얼굴뿐 아니라 팔다리까지 잡티가 늘고, 어쩌다 엘리베이터 벽 거울에서 늘어난 주름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흰머리에 대해서는 왜 거부감이 적은 지 이상하다.

레이저도 쏘고 싶고 보톡스도 맞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 머리카락은 이왕 세기 시작했으니 얼른 노화가 진행되어 은발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다.

완전히 하얗게 세기까지의 지저분한 과정을 건너뛰고 싶어서 아이돌처럼 탈색을 해 봐? 하는 생각도 해 봤다.  빨리 어울리나 아니나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


아마도 나에겐 흰머리가 노화로만 인식되기보단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테지.

주름보다 더 쉽게 가릴 수 있는 있다보니, 더 쉽게, 또 굳이 그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지는 않기 때문에 더 멋지게 느껴지는,  어쩌면 나의 편견과 환상.


새치 염색을 하러 가면 손님이 많을 땐 할머니들 틈에 대기할 때도 있는데 늘 드는 생각이,

무조건 저렇게 먹물처럼 새까맣게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하셨으면 좋겠다는 거다.

대부분 하얀색이 조금이라도 비치면 큰 일 날 것처럼 새까맣게 감춰버린다.

뭐 그렇게 새까맣게 하시는 이유가 당연히 있지만,

만일 주책이랄까 봐, 권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왕 해야 하는 염색을 늘 20세기 교칙처럼 하시는 어르신이 계실 수도 있으니 주변에서 은근히 권해보면 어떨까.

한 달에 한 번 해야 하는 염색, 멋 내기 염색으로 예뻐지셔서 한 달 내내 기분 좋으시라고.

그도 아니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으니 흰머리를 내놓으시라고.


더 나이 든 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 채

마음속으로만 오지랖을 떨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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