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티 tea with milk
우유를 넣은 홍차 또는 차와 우유가 혼합된 여러 가지 형태의 음료
밀크티를 끓일 때 우유를 먼저 넣는 것을 MIF (Milk In First), 차를 먼저 넣는 것을 TIF(Tea In First)라고 한다.
오직 '아메리카노'였다.
캐러멜 시럽, 바닐라 시럽, 휘핑크림이 어우러진 커피가 맛없어서가 아니었다.
맛있는 줄은 알지만 그것들은 '커피'라고 인정이 안 됐던 것 같다. 우스운 커피부심.
(칼로리가 무서운 것은 어디까지나 두 번째라고 하고 싶다.)
깔끔한 아메리카노, 가끔 거하게 느끼한 것을 먹은 뒤에 에스프레소.
그것이 20년 넘은 내 커피 취향이었다.
커피 말고는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다. 디저트류를 좋아하면서도 달콤한 류의 '물'에 거부감이 꽤 있었다.(아무래도 두 번째 이유가 첫 번째인 것이 맞는 것도 같다.)
그런 내가! 달콤한 대만식 밀크티에 빠졌다!
1일 1잔을 하고 있다. 만일 카페인이 일정량을 넘으면 심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지지 않았다면 두세 잔이 되었을 거다.
이사 한 집 앞에 대만식 밀크티 전문점이 생겼고, 저렴했고, 그래서 시원하고 조용한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제일 기본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작으로 밀크티 종류를 하나씩 처치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아직 사귀지 못했으니 꽤 심심해서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 메뉴를 다 섭렵하는데 실패했다.
'얼그레이 밀크티'를 맛보는 순간,
"너구나! 너를 만나려고 내가 이곳에 왔던 거였어!"
어디서 주워들은 드라마 대사가 튀어나오고, 머릿속이 반짝! 시야가 확 트이는 특수효과가 나타났다!
다른 것들은 이제 그만 맛 보고 싶지 않아졌다.
얼그레이 Earl Grey
영국의 유명한 차 회사 트와이닝이 처음 만든 블렌딩에 당시 수상이었던 얼그레이 2세의 이름을 붙인 것.
베이스가 되는 홍차의 다양함과 더해진 베르가못의 성질 및 양에 따라 수많은 버전.
얼그레이가 베르가못 가향차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밀크티를 좋아할 수도 있는 나란 걸 처음 알았듯이.
시간이 흐르면 외모만 변하는 것이 아니구나.
의도하지 않아도 입맛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절로 변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지난해 겨울 어느 저녁, 이미 어둑해진 사찰 뜰에서 양초 시주하면서 간절하게 기도 올리는 중년 남성을 보며 시선을 떼지 못하던 일이 있었다. 그 간절함이 싸늘한 산바람도 잊게 했던...
사연도 모르면서 가슴이 지릿거리고 울컥해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오랜 내 생각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성격 무난한 사람이 좋다는 그 표현이 꼭 순수하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따지는 것이 여럿이어서 두루뭉술하게 그러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 기준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내 변덕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에 비하면 고작 입맛 하나 변한 것 갖고 좀 호들갑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잇값 못한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는데 호들갑을 공개적으로 떠는 것도 나의 변한 모습이다.
부족해 보이면 큰일 날듯한 열등감에서 꽤 벗어난 모습.
오늘도 시원한 얼그레이 밀크티를 마시며, 밀크티로 인해 떠오른 생각들을 펼쳐 본다.
역시 호들갑스럽게 감탄하며 말도 건다.
"너, 참 괜찮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