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부터였어. 그 거 보고 나서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다구! "
일 년 정도 잠잠했다. 오히려 지난여름 내내 엄마를 성가셔하는 지경에 이르러 가끔 진심으로 섭섭하고 쓸쓸해지던 차였다. 얼마 전부터 아이의 오래된 불안이 다시 시작되었다.
둘이서 단출하게 저녁을 먹으며 아이가 틀어놓은 TV 프로그램인지 유튜브 채널인지에 가끔 시선만 던지고 있었다. 집중해서 보던 아이가 갑자기 엄마 나이가 지금 몇 살이었지, 물어왔다. 이 녀석은 늘 이런 걸 기억 못 한다. 귀찮기도 하고 늘 나오는 반응이 뻔하기 때문에 엄마 나이를 아직도 헷갈리냐는 탓하는 눈빛만 쏘아주고 말없이 밥을 먹었다.
" 엄마가 오십이었나? "
왜 그랬는지 아이가 불쑥 점프해서 묻는데 무심하게 어, 그래 버렸다.
" 어? 오십이야? "
아이의 움직임이 멈춰 고갤 드니 얼굴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이다가 갑자기 눈이 빨개지며 으앙 입이 벌어졌다.
" 엄마, 아니 언제 엄마 오십 됐어? 엄마 인제 그럼 금방 죽어? 엄마 죽으면 안돼애.... 으헝...."
밥상머리에서 아이의 통곡이 시작됐다.
아차 싶었다. 얼른 아니라고 아직 오십까지 이만큼 남았다고 진정시키고 눈물도 닦아주었다.
그날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수시로 내 표정을 살피고 조금만 좋지 않으면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먹는 그 약은 무엇인지, 지금 왜 인상을 쓰고 있는지, 언제까지 그렇게 몇 시간씩 노트북으로 글을 쓸 건지...
여름 내내 말대꾸하며 속 썩이던 녀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시로 내 방으로 건너와 안아주고 입 맞추고 죽지 말라고 주문을 거는 밤이 시작되었다.
열 살 아이의 이런 행동이 시작된 것은 다섯 살 즈음이었다. 여섯 살이 제일 심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보통 그즈음에 죽음에 대해서 아이들이 한 번씩 그렇게 호되게 앓고 넘어간다고 먼저 겪은 또래 엄마들의 코치를 받았다. 어떤 엄마는 딸아이의 불안을 덜어주려고 직접 죽지 않는 약도 제조해서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따라 했다. 정수기 앞에 건강보조제를 가져다 놓고 매일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거 먹으면 아프지 않고 백 살까지 산다고. 그 나이엔 그게 잘 통했다.
조금 지나더니 친구들 엄마 중에 유난히 젊고 예쁜 엄마들만 좋아하던 딸아이는, 그 엄마들의 나이와 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셈을 할 수 있게 되자 늘 내가 했던
" 걱정 마, 우리 딸 결혼해서 이쁜 딸 낳을 때까지 살 거야."
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계산해 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게 성이 안 차는 모양이었다.
" 엄마. 나를 좀 빨리 낳지! 왜 그렇게 늦게 낳았어? 빨리 결혼해서 나를 스무 살에 낳았어야지! 그럼 같이 오래 살 수 있는데......"
라는 말로 나를 어이없이 웃게 만들었다.
어떻게 그런 계산도 못할 수가 있냐는 듯한 원망의 말투와 눈빛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을 거란다. 생각만 해도 힘들다나.)
클수록 점점 옛날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지만 다시, 엄마 빨리 죽지 마, 반복이 시작된 어느 날 딸아이가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 자신이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되는구나를 알고 나서 이 모든 불안이 시작되었다고.
그것은 내가 그즈음 꼭 챙겨보았던 프로그램에서 역사 강의 자료로 보여주었던 '흥수 아이'였다.
아이는 그전까지 사람이 죽으면 자는 모습 그대로 영원하다고 믿었다.
그대로 영혼만 하늘나라로 가는 거라고.
그런데..... 살아 있을 때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부러진 나무막대 같은 땅 속의 뼈대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단다. 아무리 죽어서지만 너무 끔찍하고 지금도 무섭다고.
그러니까 아이에게 엄마의 죽음은, 이렇게 내가 만지고 뽀뽀하고 같이 웃던 우리 엄마가 다 썩어 형체가 없어지고 뼈 몇 조각 남는 것이 상상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아이의 설명만 듣고는 그 공포를 완전히 이해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이가 많이 어려서 그렇게 불안해할 땐 다른 진료차 병원 갔을 때 더해서 상담도 해보고 내 양육에 문제가 있었나 덩달아 불안했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아이와 반복하고 반복해서 대화한다.
" 엄마는 오래 살 수밖에 없다니까. 엄마 외할아버지도 거의 백세까지 사셨고, 외할머니도 지금 구십 한참 넘으셨잖아. 외가는 다 장수하셔. 유전이야 유전! "
그리고 사소하게라도 어디 아프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마음대로 결심한다.
열 살 딸이 지금 내 나이 될 때까지 살려면..... 휴.......
#열일곱문학시간에#추하게늙느니#딱오십까지만#살거라고큰소리쳤던#네가보고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