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출근하듯 8시면 오는 집 앞 카페에 나왔다. 토요일마다 앉는 자리에 앉아 주문한 라떼를 허겁지겁 수혈받듯 마시며 밤샘 피로를 풀자니 바로 위의 스피커 음악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사장님이 또 볼륨을 줄인 것이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쑥스러워 나는 또 잠자코 가만있는다.
매일 오전에 오는 이곳은 테이크 아웃이 주인 카페지만 대여섯 개의 테이블도 있다. 평일엔 제일 구석 1인 테이블에 앉아서 비좁으면 좁은대로 맞은편 의자에 올려놓으면서 할 일을 한다. 그러다 토요일은 그 작은 카페에서 제일 넓고 편한 자리라고 할 수 있는 4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경험상 그래도 문제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딱 두 번 자리를 먼저 피해 준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어차피 일어설 참이었던 걸 몇 분 서둘렀던 것이고, 한 번은 외국인 엄마가 꼬물거리는 아이 둘을 데리고 왔는데 1인 테이블이 불편할 것 같아 자리를 바꾸자고 먼저 제안했던 경우였다.
입안이 시원한 기분에 가끔 사 먹는 캔디가 온라인에서 많이 저렴하기에 한 박스 주문했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늘 나뿐인 카페에 들어서며 반겨주는 어린 여사장님에게 입 심심할 때 드시라며 드렸다. 그리고 토요일마다 앉는 4인 테이블에 편안하게 내 물건들을 늘어놓고 집중하려는데 그날따라 나들이 가며 테이크아웃하려는 손님들이 많이 들락였다.
나는 무선 이어폰 볼륨도 최대인 상태에서 내 노트북만 보고 있으므로, 어쩌면 자리가 필요한 손님들이 들어와도 눈치를 못 챌 수 있겠다 싶어서 다시 사장님에게 가 얘기했다.
"제가 4인 테이블 넓게 쓰고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해서 손님들이 들어와도 모를 수가 있어서요. 혹시 저 테이블이 필요한 손님이 들어오면 자리 바꿔드릴 수 있으니까 제가 눈치 못 채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여사장님은 한 박자 늦게 알아들으시곤 활짝 웃으시며,
"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셨다. 아마도 그런 일이 거의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인 듯했다.
그래도 내 입장에선 그렇게 얘기를 해놓으니 괜한 눈치를 주고받을 일은 없을 것 같아 한결 편했다.
그날, 가을 날씨는 제대로 뽐을 냈다. 일을 하면서 자꾸 창밖을 보게 됐다. 달콤한 냄새가 카페 안에 가득 퍼진다 싶더니 사장님이 내 테이블로 무엇인가 가져왔다.
"이거 이번에 새로 나온 디저트인데 시식 한 번 해보세요."
따끈따끈, 보기만 해도 냄새만 맡아도 녹아 버릴 것 같은 크로플이었다.
너무 황송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하니 신메뉴라 정말 시식으로 드리는 거라고 강조했다.
뜻밖의 선물이라 더 예쁜 그것을 얼른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가입만 하고 활동을 하지 않아 진작에 회원 등급이 강등되었던 지역정보 카페에 포스팅했다. 우리 동네 카페 소식 게시판에 카페 이름과 신메뉴 사진과 소개를.
금방 반기는 댓글들이 달렸다. 좋아하는 곳인데 디저트 메뉴가 적어서 아쉬웠다, 잘됐다, 가보겠다... 사장님이 알아서 홍보하실 테지만 조금 더 빠른 소식통으로 알렸다는 손톱만큼의 자부심을 혼자만 느끼며 기분 좋았다.
바로 그때 생각나는 분이 있었다. 이사 오기 전 지역에서 비슷한 마음을 나누었던 분.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신도시라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살아서인지 반찬가게가 경쟁적으로 생겨났다. 밴드나 문자로 주문을 받아 원하는 시간에 배달까지 해줬다. 어느 반찬집이 어떤 메뉴가 맛있는지 돌아가며 주문해보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얼마 이상 어떤 서비스를 주면 한 집이 몰아서 주문을 하는 등 재미를 동반해 유행처럼 번졌다.
그중에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던 두 곳 중의 한 곳이었다.
배달 서비스를 쓰지 않고 여사장님이 직접 배달을 몰아서 하셨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와서 퇴근시간과 맞물리는 저녁엔 중학생 아들과 딸이 교복을 입고 배달을 오기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남의 자식인데 그렇게 예쁘고 기특할 수가 없었다.
반대로 그 사장님은 우리 꼬맹이들이 초인종 소리에 와르르 내복 바람에 뛰어나가면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떼지 못하셨다. 아이들이 요만했을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시다며. 제일 예쁠 때라며.
혼자 배달하시느라 늘 시간에 쫓기셨고 나는 밥을 늦게 먹어도 상관없어서 사정상 늦는다고 단체 문자라도 오면 늘 제일 늦게 가져다주셔도 된다고 답을 드렸기에 끝으로 배달 온 집이라 가볍게 두어 마디 나누시고 가는 거였다.
매일 주문하는 것도 아니고 몇 달만일 때도 있었으니 단골이라고 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몇 년을 가끔 사장님 반찬으로 살았다.
그러다 반찬 주문에 관심이 없어지면, 밤마다 날아오는 내일의 메뉴 문자는 아예 확인도 하지 않게 됐다.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날따라 문자가 밤에 여러 번 온다 싶어 팝업으로 뜰 때 얼핏 본 문장이 조금 이상하지 않았다면...
답까지의 시간에 텀이 있었던 건, 답을 건네도 될까 망설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난 더 어렸으니까, 내가 무슨 관계라고 뭐라고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진 않을까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장님의 답장이 내 마음을 너무 푸근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다시 보아도 무슨 대단한 내용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 저 순간에도 다시 읽는 지금에도 우리 둘의 진심이 오갔다는 확신이 있었다. 몸속 깊은 곳이 뜨뜻해지는.
정신없이 깜빡거릴 때라 사장님께 실수한 적이 있다.
지금도 아찔했던 기억인데, 괜히 마음이 여유로운 금요일 밤 우리 가족은 동네 족발집에서 느긋하게 외식을 하고 있었다. 워낙 집순이라 나가지 않는 내가 움직였던 날이니 어지간히 뭔가 기분이 좋았나 보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반찬 사장님이었다. 그제야 뒤통수에 번쩍! 번개가 짧게 내리쳤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장님! 제가 미쳤나 봐요! 반찬 주문한걸 깜빡하고 외식하러 나와버렸어요."
"아, 하하하! 아유, 다행이에요. 난 내가 늦어서 식사 못하고 배고파서 나가셨나 했어요."
"아, 어떡해요, 사장님! 죄송해요!"
"아니에요. 문고리에 걸어두고 갈게요. 다음에 주문하실 때 한꺼번에 주세요."
사장님 계좌번호를 알고 있던 나는 죄송한 마음에 얼른 송금해드렸다. 한참을 충격에 멍했던,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 건망증은 웃고 넘기는 그런 기억이다.
반찬 사장님의 늦은 꿈은 생각도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사장님은 계속 이어가고 계실까.
동글동글 사람 좋은 눈웃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장님 꿈의 배경에서 그 눈웃음을 짓고 계실 모습을 상상하면 참 아름답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아련하게 희망사항이기만 했던 내 꿈을 위해 나도 걸음을 뗐다.
환한 그 눈웃음으로 응원받고 싶은 토요일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