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이성 친구를 대하는 자세
거절만 하던 선물, 성별이 문제일까 성공이 문제일까.
"어... 이번 주 시간 내기가 좀 그렇네. 남자 친구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퇴근 후에 거길 들르거든."
"아, 그렇구나. 나는 또 출장이 잡혀 있어서 언제 서울에 있을지 모르는데. 아쉽네."
"어, 그렇지? 바쁘지."
"야, 그럼 집주소 좀 불러봐. 너 자취한다며. 혼자 뭐 해 먹기 고단 할 텐데, 내가 기사 편에 뭐 먹을 것 좀 보내줄게."
나는 괜찮다고 그것도 사양하느라 진땀을 뺐다. 다음에, 다음에 얼굴 보고 맛있는 거 사달라면서.
십여 년 만에 연락한 동창에게 시어머니도 아닌 남자 친구 어머님 병문안 핑계를 댄 것은 당연히 만나기 껄끄럽기 때문이었다. 혹시 얘가 나한테 다른 마음으로 연락했다면 불쾌하더라도 저런 식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십 대였고, 그즈음엔 동창회가 꽤 활발하게 유행한 다음이었는데 저 친구는 한 번도 나오질 않았다. 다만 친구의 성공신화는 끊임없이 전해졌다. 여자 친구들은 걔가 그렇게 잘 될 줄 누가 알았겠냐며 신기해했고 남자 친구들은 대부분 말을 아꼈다.(혹은 소수로 만나면 친구의 성공이 꺼림칙한 방법이었다더라는 소문도 전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친구는 무엇으로도 주목받는 것 없는 그냥 단체의 '일원'이었으니, 한창 취업, 진로로 갈팡질팡하던 동성의 친구들에게 얼마나 자괴감을 느끼게 했을까.
그런 그 친구가 수시로 번호를 바꾸면서 관계 정리하는 게 습관이던 내 번호를 알아 연락했고, 나는 다짜고짜 순수하지 못한 동기를 의심해 차단하기 바빴다. 그 뒤로 한두 번 연락이 더 왔던 기억이다. 문자에나 겨우 답했을까, 아마 그랬을 거다. 그때의 나는.
다시 십수 년이 흐르고, 어느 날 모르는 이로부터 카톡이 날아들었다.
내 이름이 정확히 들어간 안부.
누구세요?
그 녀석이었다.
그 새 더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이제는 국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일 년에 반도 안된다며.
친구의 사업 근황도 듣고 안부도 오가고. 그러다 그만 대화를 끝냈으면 하는 시점에.
- 초콜릿 좋아하지? 맛있는 게 있는데 내가 좀 보내줄게. 주소 찍어봐.
그러나 역시 나는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친구는 'ㅎㅎㅎ'를 보내며 마치 내 어릴 때를 떠올리는 듯 '으이구, 하여간.'을 붙였다. 하지만 어쩌랴. 왠지 불편한걸. 생각해주는 마음을 자꾸 거절하는 것도 편한 것은 아니라, 얘는 왜 자꾸 뭘 보내주려는 거야, 거절 한두 번 했음 알아듣고 그만하지,라고 눈 흘기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이 생기니 먼저 안부를 묻는 일은 절대 없었고.
이사를 한 후, 나는 연락처 정리를 했다. 의미 없이 저장만 되어 있는 번호들은 모두 삭제했고, 메신저 친구들도 먼저 안부를 전하는 사람 아니면 모두 숨겨놓거나 삭제했다. 아예 메신저 프로필을 훑어보거나 하는 짓을 하질 않았다.
- 은월. 요즘 어떻게 지내니? 가끔 너 생각난다.^^
아무 닉네임도 없이 점 두 개 찍혀있는 사람으로부터의 메시지.
열심히 숨김 친구 뒤져봐도 없었다.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아! 그 친구였다. 얼굴은 없어도 사진 스타일로 알 수 있는.
일하는 중이라 통화는 곤란하다는 이유를 대 메시지만 나누었다. 여전한 친구의 사업 근황을 듣고, 다른 친구들을 돕게 돼 뿌듯해하는 친구의 자랑도 추켜주고.
그러다 또 나왔다. 이번엔 과일이었다. '마음'만 받았다. 친구는 웃었다.
그래. 이쯤이면 자꾸 마음만 받는 내게 마음이 상해도 엄청 상했겠다. 그렇게 서로 말수가 적어지다가 대화가 끝났다 싶을 무렵.
- 지금 거래처에 고기 세트 선물 보내는 중이야. 일괄 발송하는 김에 너한테도 보낼게. 주소 보내.
연속 두 번은 처음이었다. 난감했다. 최대한 서로 덜 민망하게 말해보려 했지만 그런다고 그렇게 받아들여졌을까 싶다. 괜찮아, 뭘 나까지 신경 써, 난 안부도 잘 못 전하는데 민망하게, 뭐 등등.
- 친구야. 한 번은 그냥 받아. 받아서 맛있게 먹고 그날 하루 기분 좋으면 돼.
이어진 친구의 메시지에 잠깐, 할 말을 잃었다.
- 그동안 다른 친구들한테도 한 번씩은 보냈어. D한테도 초콜릿 보냈고, 또....
부끄러운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잠시 후 고마운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하며 주소를 보냈고 선물도 받았다.
혼자 자취하는 친구에게 반찬을 보내준다고 했던 그 때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에야.
도대체 난 무슨 오해를 했던 걸까.
아마 내가 주소를 알려줬다고 바로 다른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그녀들이 보인 반응과 같은 생각일 거다.
어쩌자고, 왜 알려줬냐고, 차단하라고.
성별이 다른 친구가 이렇게 연락해 오면 제일 먼저 떠올리기 쉬운 그 오해.
부담감은 그다음 일 거였다.
친구는 이미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의 부자가 되어 있다.
생각해보니, 친구는 어릴 때의 제 모습을 아는 친구가 그리운 것 같다. 주목받지 못했던 자신의 성공을 보여주고 자랑도 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런데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제 도움이 필요해 회사에 일자리를 만들어준 친구 몇 말고는 딱히 그럴만한 친구가 없다. 그것도 알 만하다. 나라도 이 친구가 나와 동성이고 거기다 어느 정도 친했다면, 질투나 열등감에 지금처럼 온갖 리액션을 동원해 진심으로 축하하고 이야기를, 포부를 들어줄 것 같지 않다. 아무리 가끔 전하는 안부라도. 속이 더 쓰리지 않을까. 피하게 되지 않을까.
친구가 안부 끝에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옛날 생각난다고.
자수성가한 친구는 그 자신만의 외로움이 있을 테지.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를 찾아도 이를테면 나 같은 오해로 벽부터 세우거나, 자랑하려고 찾았나 보다 고까워하거나 아니면 그냥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까.
순수한 마음을 받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주변에서 쏘아대는 이상한 시선을 무시해야 하니까.
그래도 이젠 친구라고 하기에도 뭣한 세월이 흐른, 겨우 메시지로 안부만 전하는 사이에도 옛 친구로 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딱한 눈으로 보진 않아야겠다. 작은 흠도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이 앞서 사람을 오해하고 섭섭하게 만들었다.
친구가 이런 말로 응원했다.
늦게라도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냈으니 꼭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만도 큰 용기라며.
그러면서 덧붙이길,
일하는 데 필요한 사람, 만나야 할 사람 있으면 얼마든지 도움 줄 테니 꼭 연락하란다.
하하하. 그 말 안 했으면 더 멋있을 뻔했는데.
하지만 그 말을 이렇게 발판 삼기로 했다.
수준이 어느 정도는 돼야 누구 배경을 삼아도 삼을 테니,
내가 실력을 쌓고 수준을 끌어올린 뒤에도 딱 무언가 한 끗이 필요할 때,
그럴 때가 오면 너에게 부탁하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