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딧물이 심하게 생기고 죽어가던 벤자민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화분에서 분리해 내다가 갑자기, 기르던 크고 작은 식물들을 모두 정리해 버렸던 것은, 어쩌면 우울증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땐 그냥 변덕 부리는 나를 탓했을 뿐 왜 갑자기 내가 그러는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다.
썰렁해진 집 안 곳곳을 그대로 두고 살다가 이사를 하고 나니 새로운 기분 때문인지 다시 식물을 기르고 싶어 졌다.
내가 잘 키울 수 있는 종으로, 너무 작지 않고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것. (저층이라 햇볕이 강하지 않다.)
새로 이사한 곳은 이제 도시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 아직 없는 것이 많은데 식물을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거기에 해당됐다. 집에서 20분을 걸어 간 <재스민 화원>에는 계절마다 유행처럼 나왔다 사라지는 작은 화초들만 가득했다. 아니면 내 키를 넘는 큰 나무들. 내가 원하는 식물은 찾을 수 없어 실망하고 돌아왔다. 식물은 꼭 직접 보고 사고 싶은데.
문득 지난 내 생일, 친구와 양재동 꽃시장에 갔던 기억이 났다.
우리 둘 다 식물을 좋아해서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화초 시장을 걸어 다녔다.
친구는 행잉 화분을 하나 샀고 나는 곧 이사 예정이라 구경만 했다.
그리고 아이 주먹만 한 장미를 좀 골라 보라기에 주인이 추천해 주는 것들 중 골라봤다.
-꽃꽂이할 거니까 포장은 그냥 가볍게 해 주세요.
그 장미는 내 품으로 왔다!
아닌 척하며 친구가 사서 안겨 주는 생일 선물!
너무 오랜만의 꽃선물이라 그랬는지 꽃을 어색하게 들고 다닌다고 친구가 놀리며 웃었고, 멋쩍게 웃는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이사 후 또 한 번 오자고 했다.
2020 생일
그러나 나는 서울에서 아주 많이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고, 그래서 친구와 물리적으로 멀어진 것은 물론 양재 꽃시장 방문은 무리다.
식물을 다시 기르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져서 결국은 온라인에서 찾아보았다.
후기를 꼼꼼하게 읽으며 사이트를 찾아다닌 지 이삼일.
그렇게 만난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 반려 식물.
공중 식물 <틸란드시아 이오난사 & 수염 틸란드시아>
물 먹은 수염 틸란드시아
<틸란드시아> -파인애플과에 속하는 착생 현화식물 -공중에서 잎을 통해 먼지와 수분, 영양분을 흡수함 (습도가 높은 곳에서도 잘 자람) -온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편(수염 틸란드시아는 -10도인 곳에서 자라기도 함) -이오난사는 잎이 붉게 변하면 꽃을 피움 -수염 틸란드시아는 프랑스 어느 지역에선 '할아버지의 수염grandpa beard'이라고도 불림.
처음 만나는 식물이다 보니 조금 걱정을 했다. 죽이면 어쩌지.
그래서 환기와 물 주는 것에 신경을 바짝 썼는데, 판매자는 일주일에 두 번 물을 흠뻑 주라고 했으나 나는 수염 틸란드시아가 쪼그라들면 바로 물에 담갔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그대로 담그는데 코코넛이 물에 젖지않게 하고,이오난사는 분무기로 충분히 적셔준다. 즉, 수염 틸란드시아만 담그는 것.
6월의 날씨엔 이틀이나 이틀 반 정도의 간격이다.
환경이 모두 다르니 그건 기르는 사람 몫인 것 같다.
저렇게 물을 먹은 바로 직후는 초록 초록하다. 기분이 마구 좋아지는 색깔이다.
많이 먹었구나, 우쭈쭈! 라도 해 주고 싶다. 막 기특하다.
저랬던 수염 틸란드시아는 수분이 점점 마르고 사라지면 회색이 많이 들어간 청록색이 된다. 잿빛 녹색이라 해야 하나.
카페 인테리어에서 많이 보는 그 색깔이다. 분위기 있다.
그리고 위의 사진보다 부피도 길이도 줄어 있다.
그럴 때 나는 가끔 다가가서는 손 한가득 쥐었다 놨다 한다. 물론 살살.
무슨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고 그냥 내 기분이 좋아진다. 내 애정 표현이다.
코코넛 열매 윗부분 파인애플 잎 같은 아이가 이오난사이다.
배송되었을 때 잎 몇 군데가 붉게 변해있어서 꽃이 필 예정이구나 좋아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두 달 동안 저렇게 다시 초록초록 해졌다. 내가 만들어 준 환경에 뭐가 문제가 있었나.